“차례상값도 안 되는 내 정보”… 5년 소송에 10만원 보상

입력 2025-10-04 05:00

SK텔레콤, KT, 롯데카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서비스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며 ‘금전배상’을 받기 위한 손해배상 소송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만 수년간의 재판 끝에 배상책임을 인정받더라도 1인당 배상금액은 10만원 수준에 그친다는 점이 한계로 지목된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각 로펌에서는 기업의 정보유출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집단 소송을 활발히 준비하고 있다. 해킹사고로 28만명의 카드 번호·CVC 번호·주민등록번호를 포함해 총 297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롯데카드 고객 중 일부는 지난달 22일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개인정보 유출로 최소 362명이 2억4000만원 이상이 소액 결제 피해를 본 KT에 대해서도 집단 소송이 예상된다.

문제는 긴 소송 기간이다. 수년 뒤에야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점은 소송을 고민하는 시민들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2011년 네이트·싸이월드 해킹으로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하자 제기된 소송은 7년이 지난 2018년이 돼서야 대법원에서 배상 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확정되며 종료됐다. 2016년 5월 가입자 103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던 인터파크 역시 2021년이 돼서야 인터파크가 원고 2400여명에게 10만원씩을 배상하는 내용의 조정이 성립됐다.


올 4월 2000만명 이상의 개인정보 유출 피해가 발생한 SK텔레콤의 책임을 묻는 복수의 소송들도 아직 준비 서면을 제출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피해자들을 대리해 소송을 제기한 한 로펌의 변호사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서 SK텔레콤의 과실을 인정하며 과징금 결정을 내린 만큼, 배상 책임을 피하긴 어렵다고 보고 준비 중”이라면서도 “판결 확정까지 최소 2년은 걸릴 것을 각오하고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배상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그 액수가 제한적이라는 점 역시 한계다. 306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모두투어 개인정보 유출 소송에서도 최근 10만원 배상 판결이 나왔다. 유출 피해자 측을 대리한 진수일 변호사는 “법원의 1인당 10만원 배상 판결이 11년째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소송 수임료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로펌들이 소송 참여를 독려하고 있지만 참여자 수가 저조하다 보니 소송에 힘이 실리지 않고, 사고가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법조계에서는 판결의 효력이 전체 피해자에게 미치는 집단소송 제도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법 개정의 기약이 없는 상황이라 로펌들은 자구책을 마련 중이다. 법무법인 로집사는 롯데카드 유출 사고로 피해를 본 고객들을 채권자로 모집해 회생 신청을 하는 방안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기업의 자본금 10% 이상의 채권을 모으면 회생 신청이 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법원이 회생 신청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다만 로펌들은 소송 절차 대신 회생 개시 신청을 압박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이정엽 법무법인 로집사 대표변호사는 “기업이 배상 방안 논의와 보안 강화책 마련에 빠르게 나설 수 있도록 이 방법을 모색하게 됐다”고 말했다.

윤준식 기자 semip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