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특검(내란·김건희·채해병)이 지난달 20일로 지명 100일을 넘기며 어느새 후반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세 개의 특검이 동시에 출범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수사 인력이 역대 최대 규모로 꾸려졌고 수사 기간도 가장 길다. 각 특검팀은 모두 수사기간 연장을 결정하며 사건 관계자들의 혐의 입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특검의 성과에 대한 판단은 당장의 구속기소 건수, 구속·압수수색 영장 발부 건수와는 별개라는 분석이 나온다. 역대 특검에서도 구속기소 등에 초점을 맞춘 성과지향적 수사가 이뤄졌지만, 정작 법원에서 피고인들이 무죄를 받거나 감형을 받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결국 법원의 최종 유무죄 판결이 특검이 받아보게 될 성적표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소건수… 김건희 특검 ‘최다’, 채해병 특검 ‘0건’
8일 법조계에 따르면 3대 특검 중 가장 많은 의혹(16개)을 수사하는 김건희 특검은 ‘주요 피의자들에 대한 기소’라는 측면에서 비교적 뚜렷한 실적을 올렸다. 수사 개시 58일 만에 김건희 여사를 기소한 데 이어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 건진법사 전성배씨, 이일준 삼부토건 회장, ‘김건희 집사’ 김예성씨 등 총 14명을 기소했다.김건희 특검은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2일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공천 청탁 의혹에 연루된 김상민 전 검사,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특혜’ 의혹의 키맨 김모 국토교통부 서기관도 기소했다. 기소 여부와 별개로 구속하는 데 성공한 피의자는 14명에 달한다.
내란 특검은 그간 수사 속도를 내는 데 주력해 왔다. 조은석 특검은 지난 6월 임명된 지 일주일 만에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기소했다. 그를 시작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 7명을 기소했다. 윤 전 대통령 측과는 조사일·조사 방식을 두고 신경전도 불사하지 않았다.
채해병 특검이 기소한 사건 관계자는 아직 ‘0명’이다. 채해병 특검은 ‘VIP 격노설’을 중심으로 사실관계를 재구성하고, 증거 수집에 주력하며 피의자들의 혐의 다지기에 집중하는 중이다. ‘수사외압 의혹’의 사건 발생 과정을 아래 단계에서부터 짚었고, 최근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불러 조사하며 윤 전 대통령 등 윗선을 향해 칼끝을 겨누고 있다.
세 특검이 저마다 짊어진 과제들도 있다. 김건희 특검은 사건 관계자 기소를 신속하게 진행했으나 ‘별건 수사’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김 여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혐의로 구속한 인물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고, 일부 피의자들은 김 여사와의 연결고리가 뚜렷하지 않았는데도 기소 당했다는 주장을 거듭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은 별건 수사 지적에 대해 “특검 출범 취지 자체가 김 여사 개인에 대한 수사 목적이라기보다는 국정농단 의혹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있다”는 입장이다.
내란 특검은 한 전 총리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나 기소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외환죄와 관련한 수사 성과가 명확하게 나오지 않았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숙제로 꼽힌다.
채해병 특검은 ‘기소 0건’ 기록이 대외적 약점이다. 다른 특검과 비교할 때 100일 동안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다만 채해병 특검은 정해진 수사 일정에 따랐을 뿐 수사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역대 특검 15번 중 성공 사례는 ‘소수’
3대 특검 이전 역대 특검은 총 15번 발족했으나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는 특검은 소수에 속한다. 주요 인물을 둘러싼 핵심 의혹의 실체를 밝혀내고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끌어내는 일이 특검의 성패를 가르는 잣대가 되는데, 법원 판단이 특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2018년 ‘드루킹 특검’은 가장 성공한 특검의 예로 꼽힌다. 드루킹 특검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김경수 당시 경남도지사의 ‘드루킹 댓글 조작 공모’ 사건을 수사한 끝에 김 전 지사를 기소했고, 대법원은 2021년 김 전 지사에게 댓글조작 혐의(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로 징역 2년을 확정했다. 사건 관계자들이 수사 단계에서의 진술을 재판에서 바꾸는 경우가 많았지만, 포렌식 자료 등 객관적 증거를 다수 확보한 점이 성공 요인으로 꼽혔다.
2001년 ‘이용호 게이트 특검’과 2003년 ‘대북송금 특검’도 기소 후 유죄 확정 판결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이용호 게이트 특검은 이용호 전 G&G 회장의 정관계 로비를 수사했고, 이 전 회장은 파기환송심과 재심을 거쳐 대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신승남 검찰총장의 동생 신승환씨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03년 대북송금 특검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정부가 북한에 거액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풀기 위해 출범한 특검이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06년 당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2016년 ‘국정농단 특검’은 사건 관련자들의 기소를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 징역 22년,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징역 18년,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 징역 2년6개월이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반면 혹평을 받은 특검도 적지 않았다. 1999년 ‘옷 로비 사건 특검’은 “앙드레 김의 본명이 ‘김봉남’이라는 사실만 밝혔다”는 비판을 받았고,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 비리 의혹 특검’은 정치 폭로로 시작해 별 소득 없이 끝났다고 평가받았다. 2005년 철도공사 유전개발 특검, 2008년 BBK 특검 등도 피고인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는 점에서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객관적 증거 수집과 정치 중립성이 중요”
특검의 성과를 평가하는 핵심 요소는 결국 법원의 선고 결과에 있다. 기소 실적은 1차적 기준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보여주기식’ 기소에 그쳐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건의 사실관계를 면밀히 재구성하고 차분한 법리 검토로 혐의를 명확히 적용하는 게 최우선이라는 것이다.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법원에서 유죄 판단을 받아내기 위해선 객관성을 갖고 평가받을 수 있는 증거와 자료를 수집하는 데 주력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며 “특검의 생명은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국민이 불신을 느끼는 의혹을 해소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특검이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면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권력 핵심들을 수사하는 만큼 불필요한 오해를 사면 수사 동력을 잃거나 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특검을 어떻게 믿고 수사를 시킬 수 있겠나”라며 “사안의 경중을 고려하며 여론을 살피기보다 공정한 수사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성영 신지호 이서현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