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독일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IFA) 전시장. 중국 앤트그룹의 로봇 분야 계열사인 앤트링보테크놀로지(앤트링보) 부스를 중심으로 고소한 냄새가 퍼져 나갔다. 이날 요리를 진행한 셰프는 휴머노이드 로봇 ‘R1’이었다. 두 팔과 손가락을 가진 R1은 느리지만 정확하게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마늘을 볶아냈다. 막힘 없이 요리를 이어가는 모습에 지켜보던 관람객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떠올랐다. 앤트링보에 따르면 R1은 인공지능(AI)을 통해 요리 과정을 계획하고, 새로운 요리법을 학습하는 것이 가능하다. 공간 인식 기능을 탑재해 조리도구나 식재료의 위치도 스스로 파악한다.
제조와 물류, 농업에 이어 요리 분야에서도 로봇의 활약이 점차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조사기관 리서치 네스터에 따르면 전 세계 요리 로봇 시장 규모는 2019년 8617만달러(약 1207억원)에서 2028년 3억2000만달러(약 4485억원)까지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매일 ‘요리 전쟁’을 치르는 학교 급식실에도 로봇이 지원군으로 등장했다. 부산시교육청은 지난달 금정초와 남일고, 부산체고에 다기능 조리 로봇을 도입했다. 이 로봇은 전기솥에 로봇 팔이 연결된 형태로, 튀김과 볶음, 국 등 3가지 공정을 수행할 수 있다. 사람이 직접 뜨거운 기름과 끓는 국물을 다루는 일이 줄어들어 부상 위험이 낮아질 뿐아니라, 휘젓기와 같은 고강도·반복 노동도 덜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해외에서는 일찌감치 ‘로봇 셰프’가 두각을 나타내는 중이다. 특히 미국 경우 외식업이 성행하며 경제 전반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정작 업체들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어 ‘로봇 손’을 빌려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 레스토랑협회가 지난해 발표한 산업 현황 보고서에서 조사에 참여한 외식업 운영자의 45%는 고객 수요를 충족하기에 충분한 직원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또 이들 중 57%는 필요한 인력의 10% 이상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외국인 이민자 규제까지 강화하면서 구인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미국의 패스트푸드 체인 ‘화이트 캐슬’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부터 로봇 팔 ‘플리피’를 활용해 치킨 조리, 햄버거 패티 뒤집기 등 작업을 처리해오고 있다. 개발사 미소 로보틱스에 따르면 최신 모델 ‘플리피2’는 시간당 약 60개의 튀김 바구니를 만들어낼 수 있다. 피자와 치킨 윙, 파스타 등 다양한 음식을 선보이는 날라 로보틱스의 AI 기반 로봇 ‘피자이올라’도 업계의 시선을 끌고 있다. 피자이올라는 한 시간에 최대 50개 피자를 완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만다린로보틱스가 선보인 ‘로보틱웍’이 대표적인 요리 로봇으로 꼽힌다. 실제 요리사가 사용하는 웍과 화구에 설비를 더한 형태인 로보틱웍은 세계 최고 요리사들의 웍질 영상을 분석, 이와 꼭 닮은 움직임을 구현했다. 현재 안산복합휴게소와 김포공항, 롯데마트 동래점,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식당에 설치돼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다.
박선영 기자 pom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