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다음달 5일(현지시간)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 관세’ 조치에 대한 위법 여부를 심리하기로 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각국 기업들이 판결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정부는 대법원이 일부 관세 조치에 대해 위법하다고 판결하더라도 관세 부과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라 미국 무역정책의 불확실성은 계속될 전망이다.
6일 외신 등에 따르면 미 대법원은 다음달 5일 트럼프 대통령이 1977년 제정된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을 근거로 추진한 광범위한 관세 부과 조치의 적법성 여부를 심리할 예정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IEEPA를 토대로 수십 년간 누적된 미국의 무역 적자를 일종의 ‘국가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관세 부과 정책을 추진했다. 대법원은 트럼프 행정부 요청대로 이 사건을 신속 처리하기로 했으며 미국 언론은 연내 판결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앞서 국제무역법원은 지난 5월 IEEPA를 근거로 한 관세 부과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이어 지난 8월 연방순회항소법원도 원심 판결을 받아들였다. 항소법원은 특히 “IEEPA에 ‘관세(tariff)’라는 단어가 없고, 수입세 권한은 ‘규제(regulate)’ 권한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만약 대법원이 하급심 판단을 확정할 경우 한국산 제품에 적용하고 있는 상호관세 25%를 비롯해 IEEPA 기반 관세 조치는 상당 부분 효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정부가 관세로 거둔 수백억 달러를 환급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위법 판결이 ‘전면적이고 즉각적인 관세 무효’ 조치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법원이 일정 시점까지 관세를 지속시키거나 환급 조치를 제한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미국 정부는 패소하더라도 관세를 유지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최근 뉴욕 이코노믹 클럽 연설에서 “(위법 판결이 나오더라도) 다른 법적 수단을 통해 관세를 유지하겠다”며 “관세는 판결 결과와 상관없이 무역 정책의 핵심 수단으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다른 법적 수단’은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122조와 301조, 관세법 338조 등이 거론된다. 이중 무역확장법 232조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수입 물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해 이미 자동차·철강·알루미늄 등 품목 관세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미 대법원이 보수 성향이라는 점도 변수다.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 때 임명한 대법관 3명을 포함해 6명이 보수 성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원이 행정부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자신감을 드러내 왔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지난달 24일 한국경제연구원과 선진통상포럼이 공동 개최한 한·미 관세협상 관련 세미나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법적 대체 수단이 있다는 점을 과시하고 있고 품목 관세는 상호 관세와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상호 관세 관련) 판결이 나온다 하더라도 한국이 부담해야 할 관세 부담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자국 중심 기조는 세계 질서의 대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어 미국 외 대체 시장 발굴, 내수진작과 FTA 강화 등 국가 차원의 장기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