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초심의 자리”…이 대통령, 즉흥적으로 전통시장 찾는 이유는

입력 2025-10-05 00:01
지난 9월 이재명 대통령이 인천 용현시장을 방문한 모습. 대통령실 제공

지난 6월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추념식을 마친 이재명 대통령은 곧장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 골목으로 향했다. 분식집 앞에 멈춰 서 어묵 꼬치를 집어 들며 “장사 잘되십니까? 요새 경기는 어때요?”라고 물었다. 예상치 못한 대통령의 등장에 상인들은 떡볶이를 권하며 웃음을 터뜨렸고, 시민들은 휴대전화를 꺼내 대통령 모습을 담았다.

이 대통령은 틈날 때마다 예정에 없이 시장을 찾았다. 취임 이후 가장 자주 찾은 장소 역시 시장이었다. 이같은 ‘시장 사랑’에 대해 대통령실 참모들은 새로운 모습이 아니라고 말한다. 한 관계자는 “시장은 대통령의 개인적 경험과 정서가 담긴 상징적 공간”이라며 “어머니가 시장에서 장사하셨던 곳이라 애착이 깊다. 시장에 가면 초심을 되새기고 에너지를 얻는다고 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시장만큼 먹고사는 문제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없다”며 “시장 방문은 대통령에게 오랜 습관 같은 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공식 일정을 마치고 인근 시장을 찾거나 사전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들르는 일도 많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서민 경제를 가장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 시장”이라며 “단순한 민생 점검을 넘어 대통령의 정치적 정체성과 맞닿아 있는 무대”라고 설명했다.

지난 9월 이재명 대통령이 인천 용현시장을 방문한 모습. 대통령실 제공

취임 후 시장 방문은 네 차례 이뤄졌다. 8월 17일에는 김혜경 여사와 광복 80주년을 맞아 시민 120여 명과 함께 영화 독립군: 끝나지 않은 전쟁을 관람한 뒤 은평구 연서시장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민생회복 소비쿠폰’의 체감도를 확인하기 위해 상인들과 물가 이야기를 나눴다. 9월 5일에는 인천 연수구에서 바이오산업 토론회를 마친 뒤 용현시장을 찾아 축산물 가게에서 고깃값 동향을 묻고, 분식집에서 순대·떡볶이·햇고구마를 사서 시민들과 함께 나눠 먹었다.

열흘 뒤인 17일에는 성남시장 시절 상권 활성화 사업을 이끌었던 성남 태평동 현대시장을 찾았다. 한 상인이 “성남시장 시절 자주 뵀는데, 대통령이 되시고는 못 볼 줄 알았다. 다시 보니 반갑다”고 말하자, 이 대통령은 활짝 웃으며 손을 잡았다. 이어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용처’ 안내문이 붙은 두부 가게를 방문해 “이걸 붙여놓은 이유가 뭐냐”고 묻자 상인은 “붙여놔야 손님이 많이 온다”고 답하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즉석 대화가 늘 이어졌다. 상인이나 시민들이 “장사가 안된다”거나 “경기가 좀 회복되면 좋겠다”는 하소연을 꺼내면 대통령이 곧바로 반응했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많은 정치인이 시장을 찾는 건 표나 민심을 의식한 이벤트일 때가 많지만, 이 대통령은 현장에 직접 들어가 솔직하게 소통하는 걸 즐긴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이재명 대통령이 인천 용현시장을 방문한 모습. 대통령실 제공

이 대통령의 시장 행보는 개인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어린 시절 이 대통령 어머니는 시장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며 생계를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어려운 생계 탓에 집안 역시 시장 인근에서 터전을 잡고 생활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어머니는 화장실로 출근하시기 전 제 손을 잡고 공장에 바래다주시곤 했다”며 “그래도 행복하던 시절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시장을 주요 정책 무대로 삼기도 했다. 대선후보 시절이던 2022년엔 성남 상대원시장을 찾아 눈물로 연설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자신을 둘러싼 논란들을 해명하며 “(작은형님이)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참혹한 말을 어머니에게 하기에 욕을 했다. 공직자로서 끝까지 참았어야 했는데 잘못했다”고 눈물을 보이며 “여전히 많은 사람이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고 위험 속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함께 잘 사는 세상, 좌절해서 포기하고 싶은 사람 없는 세상, 열심히 일하면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윤예솔 기자 pinetree2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