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중독 환자 약물, 의료현장선 ‘깜깜이’…유명무실한 투약이력조회

입력 2025-10-03 05:01
생성형 AI 로 만들어진 이미지 입니다.

동네 정신건강의학과(정신과) 의원에서 약을 받은 환자 10명 중 8명은 다른 병원에서 ‘투약 이력’을 확인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급실에 이송된 급성중독 환자와 외래 정신질환자 등 촌각을 다투는 치료 상황에선 환자가 먹은 약을 파악하기 위한 개인투약이력조회 서비스가 유명무실해지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환자가 복용한 약을 파악할 수 있는 개인투약이력조회를 운영하고 있다. 의약품 중복 사용 등을 점검하기 위해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에 조제 내역을 입력하면 개인투약이력으로 남게 되는 구조다.

하지만 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심평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외래환자의 원내 처방·조제 DUR 점검건수’를 보면 지난해 정신과 의원에서 수집한 원내 처방·직접조제 중 투약이력조회로 연계되는 비율은 전체 처방(824만1683건)의 16.6%에 불과했다. 처방 단계의 DUR 점검은 전체 처방의 16%(131만6000건)에 불과했고, 조제 단계 DUR 점검은 처방의 0.62%(5만1417건)로 떨어졌다. 정신과 환자 10명 중 8명의 투약 이력이 누락되는 셈이다.

가장 큰 혼란을 겪는 곳은 중독 환자가 이송되는 응급의료 현장이다. 의식을 잃은 환자에게서 투약 정보를 알아내기 어렵고, 치료 시 자칫 중복 처방할 우려도 있다. 익명의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응급 상황에서 유달리 정신과 약물만 복약 조회가 되지 않는다”며 “약물 종류와 ㎖ 단위의 복용량에 따라서 처치 방법이 달라진다. 환자 안전과 직결된 문제”라고 토로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응급실로 이송된 급성 약물중독 환자는 매년 2500명 안팎이다.

의료계에선 처방과 조제 사이 발생하는 DUR 점검 격차가 ‘도덕적 해이’라고 비판한다. 본래 자·타해 위험이 있는 중증 정신질환자에게 예외적으로 허용되던 ‘원내 처방·직접 조제’가 정신과 의원에서 경증 환자에게도 무분별하게 확대되면서 DUR 점검을 누락하는 상황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장창현 신천연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은 “최근 우울증과 불안장애 등으로 늘어난 경증 정신질환자에게 암묵적인 원내처방·직접조제가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정신과 의원에서 조제 단계의 DUR 점검이 누락돼 환자와 의료진이 약물 복용 이력을 확인하지 못하는 공백이 발생한다”며 “원내 조제 단계에서도 DUR 점검이 이뤄지도록 정부가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