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의 거짓말’ 추적한 보좌관 “사실 태워지고 있다”[인터뷰]

입력 2025-10-05 10:00 수정 2025-10-05 10:00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문관식 보좌관이 2일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문 보좌관은 국회 상임위 활동을 바탕으로 최근 '재활용의 거짓말'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이병주 기자

정부는 ‘재활용률 86%’라고 성과를 자랑한다. 아파트 단지마다 경비원의 안내에 따라 분리수거도 철저히 진행된다. 재활용과 분리수거는 한국에서는 당연한 상식으로 통한다. 그런데 이렇게 분리수거된 쓰레기들은 과연 제대로 재활용이 되는 것일까.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문관식 보좌관은 2년 전 ‘재활용률 86%’라고 홍보하는 정부의 문구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문 보좌관은 지난 2023년 처음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국정감사에서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가 추적 끝에 알아낸 문제의 핵심은 ‘재활용의 정의’였다. 국내법 체계상 재활용은 ‘폐기물을 원료나 연료로 활용하는 일’로 정의된다. 특히 시멘트·제지 공장 연료화가 재활용 실적에 포함되고 있는 게 문제였다. 재활용의 정의가 너무 넓다 보니 대부분의 쓰레기가 시멘트 공장에서 태워지고 있던 것이다. 시멘트 공장으로 쓰레기를 보내는 것은 재활용도 하면서 가격도 싼 ‘가장 아름다운 선택’으로 포장됐다.

문관식 보좌관이 최근 펴낸 '재활용의 거짓말'. 국내 재활용 정책의 빈틈과 허점을 드러냈다.

추석 연휴를 앞둔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문 보좌관은 “재활용의 정의를 다시 바로 세워야 한다. 외국 기준에 맞춰 ‘물질 재활용’만 재활용으로 규정하고, 나머지 소각 등은 재활용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며 “그래야 진짜 통계가 보일 것이다. 현실을 제대로 봐야 적절한 대책 마련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돈이 안 돼서 버려지는 쓰레기를 정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며 ‘자원순환공사’(가칭)의 설립도 제안했다.

다음은 문 보좌관과의 일문일답.

-재활용을 주제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구체적인 계기는.
“2023년 중순 환경 문제를 다루기 위해 A공장을 방문해 현장을 살펴본 일이 있었다. 쓰레기장에 ‘재활용 97%’라고 홍보 문구가 적혀있길래 ‘3%는 어떻게 채울 수 있는 것이냐’고 공장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겨울에는 추워서 쓰레기가 잘 안 탄다. 그래서 시멘트 공장이 가동을 안 해서 3%가 빈다’고 하더라. 재활용이라는 것들이 결국 시멘트 공장으로 가서 태워지는 비율이라는 뜻이었다. 그때부터 재활용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국정감사에서 관련 질의를 하며 자세히 자료를 살펴보게 됐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가.
“재활용의 기준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현행법 체제에서는 플라스틱을 새 제품으로 만드는 ‘물질 재활용’은 물론이고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태워 시멘트 공장에서 열원으로 쓰거나, 소각장에서 전기를 만드는 것도 모두 ‘재활용 실적’에 포함된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규정을 만든 곳은 대한민국뿐이다. OECD, 미국, EU 등은 재활용을 ‘물질 재활용’으로 한정한다. 소각이나 연료화는 별도의 분류로 엄격히 구분한다. 태워버려도 재활용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모두가 가장 저렴한 방식을 택한다. 이 구조에서 왜곡이 시작된다.”

-왜 유독 한국만 이럴까.
“정부도 그 유래를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다. 추측하기로는 IMF 시절 시멘트 공장이 어렵다고 하니 공장도 살릴 겸 쓰레기도 처리할 겸 시멘트 공장에서 쓰레기를 소각해 연료로 활용하는 점을 임시방편으로 묵인해 준 게 굳어진 것 아닌가 싶다.”

-그럼 분리수거를 할 필요가 없다고 들리기도 한다.
“아니다. 분리수거를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시민들이 이렇게 열심히 분리수거를 하고 있으니, 시민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우리 사회가 더 꼼꼼히 재활용 체계를 점검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람들이 이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더 나은 재활용 시스템을 얘기하면 관련 규정과 법규가 바뀔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재활용의 정의를 다시 바로 세워야 한다. 외국 기준에 맞춰 ‘물질 재활용’만 재활용으로 규정하고, 나머지 소각 등은 재활용에서 제외시켜야 한다. 그래야 진짜 통계가 보일 것이다. 현실을 제대로 봐야 적절한 대책 마련이 가능하다. 가칭 ‘자원순환공사’를 설립해 돈이 안 돼서 버려지는 쓰레기를 정부 차원에서 살릴 필요도 있다.”

-물질 재활용이 가장 중요한가.
“가장 중요한 것은 물건을 덜 사용하는 것이다. 입던 옷을 버리고 친환경 옷을 새로 사는 것은 자원 순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타던 차량을 폐차하고 전기차를 새로 구매하는 것 역시 자원 순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입던 옷과 타던 차를 가능한 한 오래 사용하는 것이 진짜 자원 순환에 가깝다. 폐기물 발생 자체를 막는 ‘예방’이 최우선이고, 그다음이 재사용, 물질 재활용, 그리고 마지막이 소각 순으로 자원의 우선순위가 바로 서야 한다.”

-2019년 이후 주로 국회 환노위 보좌진으로 일했다. 환경 문제에 유독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나.
“국회 환노위 이슈들은 우리 삶에 밀접하게 영향을 미친다. 라돈, 시멘트, 층간소음, 물, 공기, 화학물질 등이 그렇다. 이걸 바꾸면 우리 삶 전체가 좋은 방향으로 바뀐다. 나름대로 우리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했구나 하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문관식 보좌관은
공주 한일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보좌관으로 재직하며 환경·산업안전 분야의 정책 설계와 법률 개정에 참여해 왔다. 이러한 공로로 환경부와 고용노동부 장관 표창, 기상청장 표창, 올해의 환경인상 등 다수의 정부 및 언론기관 표창을 수상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와 세종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환경정책과 규제정책을 강의하며 학문과 정책 현장을 연결하고 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