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대통령실의 깜짝 인사가 있었다. 그동안 부족하다고 지적됐던 언론 지원과 공보 업무 확대를 위해 대변인이 투톱 체제로 변경되고 관련 조직 개편도 이뤄졌다. 대야 관계를 포함한 협치 강화를 위해 정무기획비서관도 신설됐다.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실 인선이 완전히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추가 개편이 이뤄진 상황이다 보니 배경에 관심이 집중됐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이재명 대통령의 복심 김현지 총무비서관의 1부속실장 전보였다. 대통령의 최측근인 만큼 1부속실장 적임자로 평가받긴 하지만 왜 이 시기에, 갑자기 인사가 났는지를 두고 여러 해석이 제기됐다.
‘국감 출석’이 싫었다? 지방선거 출마?
가장 먼저 제기되는 건 국감 출석 기피용이라는 의혹이다. 김 1부속실장은 총무비서관으로 일하며 청와대 내부 인사를 정비하고, 체제 구축에 힘을 쏟았다. 반면 실세 참모로서 영향력이 너무 크다는 지적이 지속돼왔고, 야당은 이번 국감에서 김 1부속실장을 불러 실체를 확인하겠다는 의욕을 보여왔다. 총무비서관은 관례적으로 국회에 출석했던 만큼 김 1부속실장의 출석 역시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지난달 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결산소위에 김 1부속실장 대신 류덕현 재정기획보좌관이 대신 출석하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다. 총무비서관은 이명박정부 첫해인 2008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결산소위에 출석해왔다. 대통령실의 안살림을 담당하는 직책이기 때문에 결산 내역에 대해 답할 책임이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야당은 “대통령실 예산을 총괄하는 김현지 총무비서관이 결산소위 불참한 건 대단한 심각한 문제”라며 “안살림을 책임지는 총무비서관이 빠진 채 결산 심사를 하는 건 웃기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야당은 다음 예산 심사 때는 김 비서관이 꼭 출석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후 국회 운영위에서 한 차례 더 국감 증인 출석 여부가 이슈가 된 직후 1부속실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논란이 더욱 커졌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1부속실장이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관례적으로 국회에 출석해오던 총무비서관 자리에서 관례적으로 출석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로 옮긴 셈이다. 관례에 따라 출석하라는 야당의 지적에 대해 ‘관례에 따라’ 출석하지 않는다고 답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야당의 반발은 거셌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 인사에 대해 “국정감사에 총무비서관을 출석시키겠다고 했더니 갑자기 자리를 바꿨다”며 “국회에 나오면 안 되는 이유가 뭐냐. 얼굴을 공개하면 안 되는 것이냐. 그 사람이 입을 열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냐. 아니면 그림자 대통령이 전 국민 앞에 드러나는 것이 두려운 것이냐”고 꼬집었다.
최수진 원내수석대변인도 “대통령실은 김현지 비서관의 국정감사 출석을 거부했고, 이를 피하기 위해 보직까지 변경했다”며 “이러한 꼼수는 입법부의 정당한 감시와 견제를 무시하는 것이자 ‘비선 실세’ 논란을 스스로 키우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 1부속실장은 정부 출범 이후 넉 달간 언론의 관심과 자신에 대한 비판 여론에 여러 차례 부담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조직개편이 한 사람만을 위해 단행되는 건 불가능하지만, 총무비서관의 역할이 끝났다고 판단했다면 ‘겸사겸사’ 인사를 했을 개연성은 있다. 특히 타이밍이 문제다. 국감 문제가 불거지기 전 인사가 단행됐다면 애초에 없었을 논란이지만, 굳이 국회에서 문제가 터진 후 뒤늦게 ‘무마용’ 인사를 한 것이라면 이 대통령에 부담이 되는 건 불가피하다. 불필요한 측근 논란만 더욱 키워놓은 것이다.
김 1부속실장의 지방선거 출마 가능성을 거론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여의도에서는 김 1부속실장이 내년 초 대통령실을 나오길 희망했다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애초에 권력 수면 위로 떠 오를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며 본인이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는 것인데, 이를 지방선거 출마용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있었다. 만약 출마가 사실이라면 대통령실 살림을 맡는 총무비서관보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공인’받을 수 있는 1부속실장이 더 유리할 순 있다.
하지만 적어도 현시점에서 출마 준비 자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친명(친이재명) 핵심 관계자는 7일 “김 1부속실장은 미래를 계획해 훗날을 도모하는 사람 자체가 아니다”라며 “그저 이 대통령 옆에서 주어진 일을 적극적으로 했을 뿐이고, 이로 인해 많은 비난과 억측을 받으면서 매우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끝나지 않은 국감 출석 논란
국회 운영위원회에 따르면 대통령실 국감은 다음 달 5일로 예정돼있다. 국회법상 증인과 참고인의 채택은 7일 전까지 의결해야 해서 여야는 오는 29일까지 증인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
김 1부속실장의 국감 증인 채택 여부도 추석 연휴 이후에 여야 협상 과정에서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추석 연휴가 끝나는 대로 여당은 민생법안 60여건 처리를 위한 본회의 일정을 야당과 협의해야 한다. 여야 협상에 임하는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와 문진석 원내수석부대표는 각각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장과 여당 간사를 맡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김 1부속실장의 증인 채택 여부가 여야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앞서 국회 운영위는 지난달 24일 국감 증인 채택을 의결하려고 했지만 당시 총무비서관이었던 김 1부속실장이 명단에서 제외되자 야당이 거세게 반발했었다. 운영위 야당 간사인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김 비서관은 절대 불러서는 안 되는 존엄한 존재냐”면서 “총무비서관은 1992년 14대 국회 이후에 단 한 번도 증인에서 제외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여당 간사인 문진석 민주당 의원은 “김 비서관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갖고 대통령실 운영에 관여하는 게 비서실장 아니냐. 비서실장한테 따져 물어도 충분히 국정감사에 지장이 없다”고 맞섰다. 결국 운영위원장인 김 원내대표는 “간사 간 협의를 더 하고, 오늘 의결하지 않고 다음에 의결하는 것으로 하겠다”며 회의를 마쳤다. 하지만 이후 여야 간 구체적인 추가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내부에서도 엇갈린 의견
1부속실장 인사로 국감 출석 이슈가 더욱 커지자 여권이 대대적으로 여론 관리에 나선 모습이다. 우상호 정무수석은 1일 공개된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부속실장은 국감에 출석하지 않는 게 관례이고, 더불어민주당도 출석 요구에 동참해야 할 텐데’라는 질문에 “100% 출석한다”고 답했다.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도 1일 김 1부속실장의 국감 출석 여부에 대해 “본인이 국회에서 결정하는 바에 100% 따르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도 지난달 30일 라디오에 출연해 김 1부속실장과 최근 통화한 사실을 공개하며 “자기는 (국정감사에) 안 나간다는 얘기를 안 했다더라. 그리고 나가서 당당하게 얘기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100% 출석의 전제는 여야 합의다. 하지만 여당이 증인 채택에 합의하고 있지 않은 만큼 실제 출석 여부는 불투명한 게 사실이다.
반면 친명 중진인 조정식 의원은 “김현지 실장은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고 사심이 없는 사람”이라며 “국정감사에 출석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에서 김현지 실장을 굳이 나오라는 것은 결국 ‘정쟁 청문회’를 하겠다는 얘기”라며 “그것을 통해서 대통령 흔들기를 하겠다(는 건데) 이것은 약간 적절하지가 않고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한 여권 인사는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야 하는 1부속실장이 업무를 제쳐두고 국회에 출석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런 특수성 때문에 출석 전례도 없는 것”이라며 “출석을 하기 위해서는 운영위에서 증인으로 채택돼야 하는데, 여야 합의가 안 되면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출석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