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군을 보호하는 ‘방패’ 역할인 국군방첩사령부는 한국 현대사에서 창설 이래 숱한 변화를 거듭했다. 방첩대(SIS)에서 육군 정보국 특무대(CIS), 육군보안사령부, 국군기무사령부 등을 거쳐 지금의 방첩사에 이르기까지 명칭과 권한, 조직 구조가 수차례 바뀌는 기구한 변천사를 겪었다.
방첩사는 2025년 이재명정부 출범과 동시에 수사·정보 기능 박탈이 결정되면서 또 한 번의 격변기를 맞이한다. 숱한 ‘간판 갈이’에도 여전히 정치 개입 논란을 피하지 못하는 반복된 역사적 숙제를 안게 된 셈이다.
한국전쟁과 전투 지원으로 확장
방첩사의 뿌리는 1948년 대한민국 육군 창설 이후 간첩을 잡기 위해 설립된 SIS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방첩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CIS로 개편된다. SIS와 CIS는 군 내부 보안과 기밀 보호, 간첩 탐지 업무를 수행하며 현재 방첩 기능의 기초를 마련한다.군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 방첩 기능 확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적 첩보 활동에 대응하고 수집한 전시 정보를 기반으로 한 작전 지원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조직은 기동적 특무부대 형태로 탈바꿈한다. CIS는 1950년 육군특무부대로 재창설되고, 방첩부대의 역할은 전투·작전 지원까지 확장된다. 군 기밀 보호의 범위가 넓어지고, 방첩 기능이 대폭 확장된 시점도 이때부터다.
전투 중심의 특무부대는 전쟁이 끝난 뒤 1960년 평시 체제에 맞게 전문적인 방첩 조직인 육군방첩부대로 전환된다. 육군방첩부대는 군 내부 보안과 정보 기능을 강화하고, 간첩 활동에 대응하는 데 주력했다. 군 수뇌부에 보안과 관련한 보고 임무도 수행한다.
보안사·기무사, 권력 속 그림자
육군방첩부대는 북한의 다양한 간첩 활동에 대응하기 위해 1968년 육군보안사령부로 확대 개편했다. 표면적 이유는 북한 위협에 대비해 육군 전체를 아우르는 보안 조직으로 확장한 것이지만 군 내부뿐 아니라 정치 환경에도 깊숙이 개입하려는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군 보안부대의 정치적 감시·통제 기능은 대폭 강화됐다.
군 방첩부대의 본래 역할은 군 내부 보안 유지, 방첩활동 등 군사 임무지만 그 기능이 정치적 감시와 통제로 전이된 것이다. 군사정부의 권력 장악과 정권 안정에 동원된 것인데, 정적은 물론 반정부 인사와 언론·시민사회·학생까지 감시 대상이 됐다. 방첩부대가 군 내부 보안기구를 넘어 정권 안보를 지키는 ‘정치 경찰’ 역할을 하게 된 것으로, 권력 유지의 도구로 전락한 셈이다. 당시 방첩부대는 군사 보안·방첩 업무를 넘어 정치 정보를 수집해 통제했다.
육군방첩부대는 1977년 국방부 직할의 보안사령부로 승격, 창설된다. 이는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라 군 권력의 정치화를 제도적으로 고착화한 분기점으로 볼 수 있다.
보안사는 실제로 1979년 당시 사령관인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며 정치 권력 장악의 핵심 세력으로 부상한다. 보안사 임무도 정치인, 언론, 재야인사 감시 수준의 범위를 훨씬 넘어섰다. 군 내부 기강 확립을 명분으로 군 내 사조직 동향 파악과 장교 충성심 점검을 하기 시작했고, 사회 전반에 대한 정치적 사찰과 여론 통제 역할도 수행한다. 보안사 창설로 군 정보부대의 정치 감시 기능이 제도적으로 공고화됐고, 그 영향력은 신군부 집권으로 극대화됐다.
보안사는 신군부 시절 심각한 사회적 불신을 초래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전 전 대통령이 물러난 뒤 민주화 흐름 속에서 군의 정치 개입 근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게 된다. 이는 자연스레 보안사 해체 요구로 이어졌고, 민주정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군 정보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목표로 한 개혁이 필수 과제로 떠올랐다.
노태우정부는 1991년 군 정보부대의 도구화와 정치 사찰의 어두운 유산을 끊어내겠다며 보안사를 전격 해체했다. 군의 보안 기능은 유지하되, 정치 사찰은 차단하는 방향으로 재창설된 기관이 국군기무사령부다. 하지만 기무사 역시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정치 동향을 파악하고 군 내부 인사를 관리하는 등 보안사 시절의 유산을 이어간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2010년대에 들어선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에 연루됐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계엄령 문건을 작성했다는 논란에 휘말리며 거센 사회적 비판을 받는다.
기무사가 여전히 정권 안보 기관처럼 기능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자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기무사 해편을 지시한다. 기무사는 사령관의 대통령 독대를 금지하고 업무 범위를 군 방첩으로 철저히 한정해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재창설된다. 안보지원사는 2022년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방첩 기능을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지금의 방첩사로 재탄생했다.
방첩사, 12·3 계엄서 또 ‘정치 개입’ 논란
방첩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측근인 여인형 전 사령관이 12·3 비상계엄 사태에 관여하며 또다시 정치 개입 논란에 직면한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계엄 당시 특정 정치인을 체포하려 한 의혹, 선거관리위원회 서버를 탈취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방첩사는 이재명정부 출범 후 또다시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고, 국정과제에서 해편 대상으로 확정된다. 군 내부에서는 “보안, 기무, 방첩 등 이미 온갖 좋은 명칭들이 차용됐던 탓에 새로운 조직명을 짓는 것도 어려울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과거의 역사적·정치적 부담이 있는 명칭을 피하면서도 조직의 정체성을 담을 적절한 작명조차 쉽지 않다는 점을 풍자한 것이다.
방첩사는 숱한 개편에도 국가와 군의 방패로서 정보 보안 기능을 수행한 만큼 그 중요성이 여전히 크다. 군 관계자는 “현대 안보 환경에서 정보 싸움은 보이지 않는 전쟁”이라며 “세계적으로 모든 주요 국가가 방첩 부대의 역할을 확대하고 있는 추세다. 개편 이후에도 방첩기능은 유지,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