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대 과학기술원(KAIST·GIST·DGIST·UNIST) 내 ‘고위험 연구실’에서 한 해 14건꼴로 안전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해화학물질과 독성가스 등 유해인자를 취급하는 고위험 연구실이 증가세인 반면 안전 관련 예산의 일관성은 떨어져 개선 필요성이 제기된다.
30일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8만9238곳의 연구실 중 5만5694곳이 고위험연구실로 분류됐다. 2020년의 4만8586곳에서 크게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중위험연구실은 800여곳 증가하는 데 그쳤고, 저위험연구실은 소폭 줄었다.
고위험연구실은 과기부 고시인 ‘연구실 설치운영에 관한 기준’상의 분류에 따른 개념이다. 해당 고시는 연구실을 고·중·저위험연구실로 나누는데, 종사자의 건강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독성가스, 화학물질 등의 유해인자를 취급하는 경우가 고위험연구실에 해당한다.
실제 고위험연구실에서는 안전사고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이 의원실이 4대 과기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들 기관의 고위험연구실에서는 올해 들어서만 8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화상, 베임 등이 흔했고 화학물질 및 증기에 신체가 노출되기도 했다. 지난 6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는 폭발 사고도 발생했다. 박사과정 중이던 20대 연구원이 실험 도중 원인 미상의 폭발에 휘말려 화상·열상 등 중상을 입었다.
최근 5년간 4대 과기원 고위험연구실에서 일어난 사고는 총 70건으로 확인됐다. 한 해 14건꼴이다. KAIST가 중대사고 포함 34건으로 가장 많았고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16건), 울산과학기술원(UNIST·14건), 광주과학기술원(GIST·6건) 순으로 뒤따랐다. 사고자 다수는 학생으로 파악됐다. KAIST에서 5년간 벌어진 34건의 사고 중 30건이 석·박사, 3건이 학사과정생에게 일어났다.
비슷한 사고가 되풀이되기도 했다. GIST의 경우 2021년에 레이저 관련 실험을 진행하던 중 자세를 낮췄다가 난반사된 레이저에 안구를 다치는 사고가 났는데, 그 이듬해에도 같은 사고가 보고됐다.
크고작은 사고가 꾸준한 반면 안전관리 예산은 막론하고 해마다 증감을 반복하며 들쑥날쑥한 양상이다. GIST는 지난해 연구실 안전 관리 예산으로 7억600여만원을 편성했으나 이는 올해 5억9800만원 수준으로 줄었다. DGIST는 2023년 약 11억6228만원에서 이듬해 5억3248만원으로 1년 만에 안전 관리 예산이 반토막났다.
정부도 빈번한 연구실 사고 관련 안전대책을 마련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8월 충북대에서 열린 기초연구자 간담회에서 실험실 사건·사고를 언급하며 안전교육 등 지원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후엔 지난 6월 폭발사고로 다친 KAIST 연구원을 찾아가 위로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첨단 과학기술 연구 수요가 늘면서 고위험연구실이 급증하는 가운데 학생들이 불안정한 안전관리 예산으로 사고 위험에 노출된 상태”라며 “미래를 짊어진 연구자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연구에 매진할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