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추석 다른 도시로 박물관 나들이 어때?… 강추 전시 5선

입력 2025-10-03 23:07
호쿠사이, 청명한 바람과 붉게 빛나는 후지(凱風快晴, 속칭 붉은 후지). 국립청주박물관 제공

청주에 호쿠사이 ‘후지산을 보러 갈까. 진주에 암행어사 마패 보러 갈까.
긴 추석 황금연휴가 시작됐다. 전국의 지역 국립박물관에서는 역사 공부가 되면서도 심미안을 높여주는 알찬 특별 전시가 가족 단위 관람객을 손짓한다. 넷플릭스를 보는 것도 지겨울 때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가족끼리, 친구끼리 거주지를 넘어 다른 도시로 가을여행 가듯 박물관 나들이를 가보자.

●마지막 황제 거처 장식한 구한말 걸작들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창덕궁의 근사한 벽화’전
이당 김은호 '백학도'.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1920년 황위에서 물러난 순종의 거처, 창덕궁에 새로 지은 3채의 전각. 순종의 접견실 희정당, 부부 침전 대조전, 순종의 휴식 공간 경훈각이 그것이다. 전통 궁궐 건축이지만 내부에는 샹들리에, 수세식 화장실 등 신식 시설을 갖췄다. 기존에 없던 벽화가 실내에 걸린 것도 화제가 됐다.
당대 최고의 원로와 신진 화가들이 참여했다. 희정당에는 52세 해강 김규진의 ‘총석정절경도’와 ‘금강산만물초승경도’, 대조전에는 30세 정재 오일영과 18세 묵로 이용우가 합작한 ‘봉황도’, 28세 이당 김은호가 그린 ‘백학도’가 배치됐다. 경훈각은 21세 심산 노수현의 ‘조일선관도’와 23세 청전 이상범의 ‘삼선관파도’가 장식했다. 6점 벽화가 한데 모인 건 처음이다. 구한말 최고 걸작을 볼 수 있는 황금 기회다.

●호쿠사이의 걸작 ‘붉은 후지’ 2주간 반짝
국립청주박물관 ‘후지산에 오르다…’전

국립청주박물관이 일본 야마나시현립미술관과 교류의 일환으로 지난달부터 시작한 전시다. 덕분에 모네 등 프랑스 인상파에 영향을 준 일본 우키요에(판화)의 거장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걸작을 차례로 볼 수 있다. 호쿠사이의 그림은 보존 규정상 2주마다 교체된다.
하이라이트는 ‘개풍쾌청’(시원한 바람과 맑은 날). ‘붉은 후지’라는 별칭이 더 익숙하다. 지난 전시 최대 화제작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와 함께 호쿠사이 걸작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일본 중요문화재 ‘조몬 토기’ 13점, 전국시대 명장 ‘다케다 신겐초상화’ 등 다른 볼거리도 풍성하다.


●역사 덕후들에 안성맞춤 전시
국립공주박물관 ‘한성, 475-두 왕의 승부수’전
장수왕과 개로왕의 대면을 담은 실감 영상. 국립공주박물관 제공

역사의 숙적, 백제 개로왕과 고구려 장수왕이 20년 넘게 벌인 전략과 정책 대결을 바둑 ‘기보’로 재해석한 흥미진진한 전시다. 개로왕이 즉위 후 일본·중국 등을 끌어들이며 벌인 외교전을 ‘포석’으로, 장수왕이 475년 3만 대군을 이끌고 백제의 수도 한성(지금의 서울)을 공격한 한성 전투를 장수왕의 ‘승부수’로 해석한다. 신라의 백제계 금동신발, 중국 남조의 도자기 등 개로왕의 외교적 포석의 결과를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도 함께 나왔다. 5세기 전후 백제·고구려의 무기, 갑옷 등 다양한 유물과 함께 실감형 영상이 박진감을 더한다.


●1400년 세월 견딘 손칼은 어떤 모습일까
국립익산박물관 ‘탑이 품은 칼, 미륵사에 깃든 바람’
미륵사지 석탑에서 출토된 손칼. 국립익산박물관 제공

2009년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손칼들이 칼집에 꽂힌 채 발견됐다. 649년 탑에 봉안됐으니 1400년 세월을 견디지 못해 원형을 알아보기 힘든 상태가 됐다. 그 칼들이 5년에 걸친 과학적 분석과 보존처리를 마치고 이번 특별전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놀랍게도 8점의 손칼에서는 국내에서 볼 수 없는 재료가 확인됐다. 칼 손잡이는 외래 수종임이 확인됐고, 일부 재료는 물소뿔로 추정됐다. 나무로 만든 칼집은 화려하게 금박을 얹었고, 그 위는 국내에 없는 대모거북 껍질로 장식했다. 백제 문화의 국제성을 짐작케 한다.

●충청 경상 전라 전국 암행어사 다 모였다
국립진주박물관 ‘암행어사, 백성의 곁에 서다’전
다양한 마패들.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암행어사’ 하면 박문수와 마패가 떠오른다. 익숙하지만 제대로 모르는 암행어사의 세계를 이참에 공부해 보면 어떨까. 암행어사의 기원과 상징, 그들이 백성의 곁에서 펼친 활동, 과거와 현재 사람들이 암행어사를 기억하는 여러 방식 등을 소개하는 전시다.
암행어사의 상징인 마패를 비롯해 관련 전시품 105건 132점이 나왔다. 경상도 암행어사 박문수와 전라도 암행어사 남구만의 초상 등 보물도 4점 포함됐다. 조선시대 관용차였던 ‘마패’는 총 16점이 전시됐는데 표시된 말의 숫자가 1~5마리로 각각 다르다. 영의정용은 5마리, 암행어사용은 2마리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