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임시예산안 처리 합의에 실패하면서 연방 정부가 1일(현지시간)부터 기능 일부가 마비되는 ‘셧다운(일시 업무 정지)’에 돌입했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에 이어 7년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무원 해고를 시사했고, 공화당과 민주당은 셧다운 책임을 상대에게 돌렸다.
미 상원은 이날 셧다운을 피하기 위해 공화당의 7주짜리 임시예산안(CR)에 대해 표결했지만 찬성 55대 반대 45로 부결됐다. 임시예산은 2025회계연도 종료(9월 30일) 이후에도 의회가 2026회계연도 예산안을 논의하는 동안 11월 21일까지 정부를 운용하기 위한 단기 예산안이다. 민주당이 별도로 발의한 임시예산안도 공화당 반대에 막혀 53대 47로 무산됐다. 임시예산안 가결에는 60표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연방정부는 1일 0시 1부터 정부 셧다운에 돌입했다. 연방 공무원 상당수가 무급 휴직에 들어가고, 일부 연방 정부 서비스도 중단된다. 핵심 쟁점은 민주당이 요구해온 의료보험 보조금 연장과 메디케이드 예산 삭감 복원이었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민주당 요구를 거부하고, 민주당도 공화당 예산안을 저지시키면서 연방정부 셧다운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다만 모든 정부 기관이 문을 닫는 것은 아니다. 국민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기관, 연방수사국(FBI) 등 법 집행 기관은 필수 업무를 이어간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단속 업무도 계속된다. 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은 이날 정부 기관들에 보낸 메모에서 “영향을 받게 될 기관들은 대응 계획을 이제 실행해야 한다”며 “질서 있게 셧다운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연방정부 셧다운은 트럼프 1기 시절인 2018년 12월 이후 약 7년 만이다. 당시 셧다운은 이듬해 1월까지 35일간 지속됐다. 전국 공항에서 지연 사태가 발생하고 연방 공무원 급여 지급이 중단되면서 트럼프가 결국 물러섰다. 당시엔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한 만큼 트럼프는 강경한 입장이다. 그는 셧다운으로 연방 예산이 끊기는 만큼 공무원 인력을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 취재진과의 질의응답에서 “셧다운이 되면 해고를 해야 한다. 많은 사람의 해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민주당에 “불리하고 그들이 되돌릴 수 없는 조치들”을 시행하겠다면서 “셧다운으로 많은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여야 모두 양보는 없다는 입장이어서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존 슌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민주당 극좌 지지층과 극좌 상원의원들이 대통령과의 정면대결을 요구했다”며 “민주당 지도부는 그들의 요구에 굴복했다. 결국 미국 국민이 그 결과를 감내해야 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민주당 의원들이 당론에서 이탈해 셧다운을 조속히 종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메디케이드 등 건강보험 프로그램 예산 삭감 철회, 오바마케어(오바마 행정부 당시 도입된 건강보험 개혁법) 보조금 연장 등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치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현명하다면 이 의료 위기를 즉시 해결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며 “미국인들이 건강보험료로 월 400달러, 500달러, 600달러를 더 내기 시작하면 대통령을 책임자로 지목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