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이전에 흡연을 시작할 경우 자녀 노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사춘기 때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남성 자녀와 그렇지 않은 아버지를 둔 자녀 간 노화 속도가 1년 가까이 차이가 난 것이다.
노르웨이 베르겐대 후안 파블로 로페스-세르반테스 박사팀은 29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유럽호흡기학회(ERS) 학술대회에서 890여명을 대상으로 한 아버지의 청소년기 흡연과 자녀 노화 간 연관성 분석에서 이 같은 결과를 도출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해당 연구를 통해 15세 전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아버지를 둔 사람에게서 실제 나이보다 빠른 생물학적 노화 징후를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로페스-세르반테스 박사는 “이전 연구에서 사춘기 흡연이 본인뿐 아니라 미래 자녀에게도 해로울 수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며 이 연구에서 부모의 사춘기 흡연이 자녀의 생물학적 노화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자 했다”며 연구 배경을 설명했다.
연구팀은 북유럽과 스페인, 호주의 호흡기 건강(RHINESSA) 연구에 참여한 7~50세 892명(평균 나이 28세)을 대상으로 본인과 부모 흡연 여부, 흡연 시작 연령 등을 조사하는 한편 혈액 표본을 이용해 후성유전적 변화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후성유전 시계(epigenetic clocks)’라는 생물학적 노화 측정법을 사용했다.
나이가 들면 세포 DNA에 추가적인 분자들이 축적되는데, 이는 DNA 자체를 바꾸진 않지만 유전자 작동 방식에 영향을 끼친다. 이런 후성유전적 변화는 노화 징후일 뿐 아니라 암과 치매 같은 노인성 질환과도 관련 있다.
연구팀이 분석한 결과 아버지가 15세 전 사춘기에 흡연을 시작한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실제 나이보다 약 9개월에서 1년 정도 생물학적으로 더 늙어 있었다.
아버지가 사춘기에 흡연을 시작하고, 참여자 본인이 담배를 피우면 생물학적 나이와 실제 나이 사이 차이가 14~15개월로 증가했다.
아버지가 성인이 된 뒤 담배를 피운 경우 생물학적 나이가 소폭 늘었다. 반면 어머니의 임신 전 흡연과 자녀 노화 사이에선 뚜렷한 연관성이 관찰되지 않았다.
로페스-세르반테스 박사는 “이 연구가 사춘기 흡연과 노화 가속화 연관성을 완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면서도 “아버지가 사춘기에 흡연을 시작하면 정자 세포의 후성유전적 물질이 변화하고, 이 변화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 연구 결과는 사춘기에 담배를 피우는 소년들이 자신도 모르게 미래 자녀에게 해를 끼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며 “정책입안자들이 청소년기 흡연을 막기 위한 더 강력한 노력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흡연자 자신뿐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청소년 흡연 예방 노력을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