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없던 이들이 모여 글로 길을 냈다

입력 2025-09-26 17:13 수정 2025-09-30 12:06
'제11회 스토리텔링 공모전' 아동청소년 부문 대상을 받은 박주환군이 26일 서울 강남구 밀알복지재단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류한석씨의 말은 어딘가 서툴렀다. 단어를 주저하는 듯 보였지만, 원하는 방식대로 소리를 내지 못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류씨는 지체장애인 동료를 향한 자신의 편견을 고백한 글 ‘불완전함 속의 완전한 언어’로 밀알복지재단 스토리텔링 공모전 고용 부문 최우수상을 받고 26일 서울 강남구 밀알복지재단 시상식 자리에 섰다.

그는 마이크 앞에서 “장애 등급을 받진 않았지만 사실 일상생활에서 심각하게 곤란을 겪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아실지 모르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오늘도 말이 어색하지만 정말 지금 잘 하고 있는 건데, 제가 서툴러도 이해해주는 사람들 사이에 있기 때문”이라며 “일할 때 긴장하면 전화로 ‘여보세요’라고도 말을 못할 때가 정말 많았다”고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았다.

26일 서울 강남구 밀알복지재단에서 열린 '제11회 스토리텔링 공모전 시상식'에서 수상자들과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그의 고백처럼 이날 밀알복지재단 ‘제11회 스토리텔링 공모전’ 시상식에는 목소리 없던 이들이 오랜 시간 눌러 담은 진심을 글로써 세상에 펼쳐 보이는 자리였다. 올해 공모전에는 600편이 넘는 이야기가 모였고, 그중 43편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말이 아닌 글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터득한 소년 박주환군은 온몸으로 들뜬 모습을 보였지만, 수상소감 자리에선 말이 아직 언어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는 무대 위에서 힘겹게, 자신이 직접 써온 글을 내뱉었다. 중증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인해 그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박군이 준비한 글에는 “제 길은 가리워진 길처럼 보이지만 꾸준히 걸어가는 저의 시간을 사랑합니다”라는 문장이 쓰여있었다. 아동청소년 부문 대상을 받은 박군은 말을 할 수 없는 자신과 어머니가 글쓰기를 통해 처음으로 소통에 성공한 이야기를 담은 ‘숫자 2의 기적’이라는 글로 수상했다.

아동청소년 부문 대상 수상자인 박주환 군이 직접 작성한 수상 소감문. 박 군은 중증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말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글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무대 위에는 소리 대신 손짓으로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단 한 달의 기회, 고정관념을 깨는 시간’으로 최우수상을 받은 조희경씨와 ‘소리 없는 세상에서, 나의 목소리를 찾다’로 장려상을 받은 김희영씨는 수어 통역사를 통해 소감을 전했다. 조씨는 자신을 ‘농아인’이라 소개하며 “수어 문화 홍보를 위해 노력해 비장애인분들의 인식이 개선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직장에서 소통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심을 하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니, 목소리가 아니어도 수어로 대화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전했다.

일상 부문 최우수상 수상자인 조희경씨가 수어로 수상 소감을 전하고 있다.

후천적으로 시각장애인이 된 남편의 이야기를 담은 글로 장려상을 받은 조은서씨는 “오히려 장애인이 되고 나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회 속에 들어가게 된 것”이라며 “남편이 너무 재밌게 회사생활을 잘하고 있어 오히려 더 활기찬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네 살 때 사고로 팔다리를 잃고 특수교사가 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 글로 고용 부문 대상을 받은 박항승씨는, 어린 시절 한 선생님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길이 되기를 바란다며 “저의 이 평범한 일상의 글이 취업을 준비하는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