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서초구 방배동 빛교회(양태우 목사)로 향하던 날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인터뷰 시간이 다 돼 교회 앞 카페에 들어선 양태우 목사는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 통화를 마친 뒤 그는 “며칠 뒤 서울의 한 구치소에서 예배를 인도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말했다. 장례 등 교회의 갑작스러운 일정으로 예정된 구치소 예배 인도가 어려워질 때 양 목사에게 종종 이런 ‘대타’ 요청이 있다고 했다. 일정이 임박했지만, 양 목사는 흔쾌히 가겠다고 답했다고 했다.
“강당 수용에 맞춰 예배 인원을 제한하다 보니, 재소자들은 3주에 한 번꼴로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귀한 기회를 제가 없앨 수 있겠어요?(웃음)”
양 목사는 8년 전부터 서울구치소 교정위원으로 활동하며 서울의 여러 구치소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그가 목회하는 빛교회는 270여명이 함께 주일예배를 드리는 중형교회지만, 교정 사역에서는 그 어떤 교회보다 마음을 다한다.
양 목사와 성도들이 “도울 곳이 많은데 왜 범죄자를 돕느냐”는 세간의 비아냥을 들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양 목사는 “재소자들이 다시 죄를 짓지 않고 세상 속에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하나님의 손발이 되어 작은 역할을 해내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 교회가 교정 사역을 시작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새 신자로 등록한 한 성도가 의류 사업 실패로 갑작스러운 빚에 시달리다 유치장에 수감됐고, 이후 구치소까지 가게 됐다. 교회는 수감 기간 그 가족을 챙기며 도왔다. 양 목사는 “그 집사님이 출소하셔서 우리 교회에 다시 나오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며 “그런데 교회에 다시 나오신 집사님이 저에게 ‘목사님이 구치소에서 예배를 드려 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셨다”고 했다. 그때까지 교정 사역에 대해 잘 몰랐던 양 목사는 “복음을 듣기 위해 성도들이 줄 서는 곳은 구치소가 유일하다”는 집사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교정 선교를 결심한 지 1년이 지나고 양 목사는 서울의 한 구치소에서 예배를 인도할 수 있게 됐다. 이단 검증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고 나서였다. 빛교회의 교정 사역은 다양하다. 특히 60~80대 어르신으로 구성된 모세선교팀은 핸드벨 연주를 통해 사명을 감당한다. 양 목사는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어르신 20여명이 활동하신다”며 “그중엔 신장 투석을 받으면서도 참여하시는 분도 계신다”고 귀띔했다. 공연은 물론 간식도 준비해 전국의 구치소 다섯 군데에서 활동하고 있다. 양 목사는 “조폭 등 우락부락한 재소자들이 이들의 공연을 보면서 부모님 생각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자주 본다”고 했다.
오랜 사역은 특별한 만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5년 전 한 교도관이 20년 넘게 복역 중인 무기수 김철수(가명)씨의 개인 예배를 요청한 일이 그렇다. “중한 범죄를 저지른 재소자이기에 두려운 마음이 컸지요. 교정위원 1명과 함께 철수씨를 봤던 첫날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요. 그때 철수씨가 그러더라고요. ‘목사님, 저는 예수님을 믿지만 천국은 못 갈 것 같아요. 그리고 빨리 죽고 싶은데 하나님이 제 기도를 안 들어주시네요.’”
함께 예배드리던 철수씨는 그림을 배우고 싶다고 했고, 양 목사는 성도인 방영옥 작가에게 도움을 청했다. 양 목사는 ‘모든 성도는 생활 선교사’라는 목회 철학 아래 다양한 선교팀을 조직해 평신도들의 사역 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방 작가는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7년간 그림으로 봉사하고, 구치소 미술치료 수업을 진행한 경험이 있었다. 암 수술을 받은 지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방 작가는 양 목사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이날 인터뷰에 방 작가도 동행했다. “교정 사역을 해오면서도 가끔 ‘죄를 지은 사람은 벌을 받아야지, 미술을 배워서야 되겠냐’는 의문이 들어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죄의 크고 작음을 떠나 하나님 앞에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라고 간절히 구하는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 작가는 한 달에 몇 차례 구치소에서 철수씨에게 그림을 가르쳤다. 연필을 잡고 선을 긋는 것부터 시작했고 1년 가까이 그림 숙제를 내줬다. 그가 그린 그림은 지난해 교정미술전시회에서도 대상을, 최근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에서도 특선을 받았다.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의 정두옥 운영위원장은 최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방 작가를 통해 (철수씨)자신의 영혼을 담은 작품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고 평가했다. 방 작가는 “철수씨에게 게을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지난 과정을 잘 지나온 결실이라며 수상 소식을 전해줬다”고 했다.
빛교회 2층 벽엔 이 교회 제적 성도이기도 한 철수씨가 그린 그림이 걸려있다. 양 목사는 “교정 사역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있다는 걸 안다”며 “그러나 우리가 흘려보낸 사랑이 어떤 역할을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교회는 겨우 8년을 했지만 20, 30, 40년 동안 이름도 빛도 없이 많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구치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며 “장기전일 수밖에 없는 교정 사역에 헌신하는 이들이 힘과 동력을 잃지 않도록 많은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