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희생하고 타인을 위해 아낌없이 내주기만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흔히들 그런 사람을 이타주의자(利他主義者)로 부른다.
‘탱크’ 최경주(55·SK텔레콤)도 그런 삶을 살아가는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진출, 통산 8승을 거뒀다. 그리고 현재는 만 50세 이상 레전드들의 경연장인 챔피언스투어서 활약하며 2차례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00년에 PGA투어 데뷔 후 총 499개 대회에 출전해 3280만3596달러(약 459억 8736만원)의 상금을 벌었다. 2021년에 데뷔한 챔피언스투어서도 현재까지 105개 대회에서 565만2345달러(약 79억 2515만원)의 상금을 획득했다.
금전적 수입만 놓고 본다면 누가 봐도 성공한 삶이다. 전남 완도 출신인 그가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는 걸 감안하면 그 목적은 이루고도 남은 셈이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쉴 수가 없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다. 처음엔 생계형이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받은 사랑이 너무나도 커 그것을 되돌려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을 몸소 실천하려는 것이다.
2007년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설립한 ‘최경주재단’을 통해 골프 꿈나무와 일반 장학생 꿈나무들을 지원하는 것, 2011년부터 올해로 14회째 열리고 있는 KPGA투어 유일의 인비테이셔널 대회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을 통해 후배들의 꿈을 키워주는 것 등이 그 일환이다.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최경주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의 성공은 금욕주의에 가까운 극한의 자기 절제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그런 생활 패턴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외려 지금이 더 철저하다.
최경주는 25일 개막한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에 호스트 겸 선수로 참여해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PGA챔피언스투어를 마친 뒤 곧장 귀국한 터라 시차 적응도 안된 상태지만 후배들을 위한 걸음이어서인지 피곤함도 잊은 채 연신 싱글벙글한다.
많은 것을 내주고도 오히려 더 못 줘서 안달이다. 한아름 안긴 선물도 선물이지만 후배들을 위한 조언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간증과도 같아 큰 울림을 준다.
최경주는 자신이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성적’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또한 자신을 위한 게 아니다. 골프를 통해 물질이 생기면 생길수록 타인에게 더 베풀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선 좋은 성적이 필수적이라는 논리다.
후배들, 그중에서도 재단을 통해 끊임없이 배출되는 꿈나무들을 위해서라도 현역 활동을 오래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꿈나무들에게도 한때 반짝하는 선수보다는 오래 하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물론 그런 마음가짐은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 아직도 왕성한 투어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게 그 방증이다.
그래서 그는 당초 환갑으로 잡았던 은퇴 시기를 늦췄다. 언제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선수 생활은 오래 하겠다는 생각이다. 인생의 시작은 70세부터라는 걸 마음에 새기고 철저한 준비를 통해 언제까지가 될지 모를 미래를 개척해 나간다는 복안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건강이 최우선이다. 선수로서도, 지도자로서도 좋은 위치에 자리하려면 건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철저한 관리를 해서인지 다행히도 현재까지는 건강에 큰 이상 신호는 없다.
그에게는 두 가지 비전이 있다. 하나는 재단을 설립해 꿈나무들을 키우는 것, 또 하나는 일반인들도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꿈의 놀이 센터’ 건립이다. 그중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설립한 재단은 잘 운영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놀이 센터도 빠른 건립을 위해 기도 중이다.
그는 그동안 받은 성원과 사랑을 갚기 위해서라도 특히 꿈나무들을 발굴해 키우는 일을 게을리할 수 없다고 한다. 빠듯한 투어 일정에도 아이들을 돕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최경주는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스스로 에너지가 생긴다고 한다.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훨씬 행복하단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고 했다.
많은 골프 꿈나무들이 잘 성장해 현재 국내외 투어에서 활동 중이다. 그는 머지않은 시기에 PGA투어에서 활동하는 선수도 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틈만 나면 훈련장에 가서 같이 훈련한다고 한다. 매년 겨울이면 재단 꿈나무들과 자택이 있는 텍사스 댈러스에서 동계 훈련을 하는 것은 바로 그런 기대감에서다.
많은 후배가 최경주를 롤모델로 삼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귀한 씨앗들이 뿌려져 결실을 보아야 할 토양이 척박하다. 그래서 후배들을 보면 늘 마음이 짠하다. 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젊은 선수들에 대한 큰 관심과 사랑을 호소하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