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응급실서 사라진 경증자살시도자… “의·정갈등 여파”

입력 2025-09-28 06:00
국민일보DB

응급실로 이송된 자살시도자 가운데 경증·비응급 환자 수가 5년 새 절반 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계에선 의·정 갈등 사태 등의 계기로 응급의료체계가 중증·응급환자 위주로 재편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살시도자는 재시도 위험이 큰 고위험군임에도 부상 정도가 심하지 않다는 이유로 응급실에서 배제된다면 선제적 자살 예방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립중앙의료원로부터 제출받은 ‘자살시도자 응급실 내원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를 찾은 자해·자살시도자 가운데 경증 자살시도자는 4639명으로 집계됐다. 2020년 9017명 대비 48.7% 줄어든 것이다.

응급실에서는 위급한 정도에 따라 나눈 응급환자분류기준(KTAS)에 맞춰 진료 순서를 정한다. KTAS는 매우 중증(1등급), 중증(2등급), 중증 의심(3등급), 경증(4등급), 비응급(5등급)으로 나뉘는데 4, 5등급이 경증으로 분류된다. 4, 5등급의 경증 자살시도자는 2021년 9476명, 2022년 9027명, 2023년 8593명 수준이었다가 2024년 4000명대로 급감했고, 올해는 상반기 기준 1380명에 그쳐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응급실을 찾은 경증 자살시도자가 눈에 띄게 준 데 대해 의·정 갈등에 따른 의료대란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당시 응급실 과부하를 막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권역응급의료센터를 내원한 경증 환자의 진료비 본인부담률을 50%에서 90%로 높이고, 인력·시설·장비 부족을 근거로 응급실에서 진료 거부를 통보할 수 있도록 지침을 개정하면서 경증 환자의 병원 문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조규종 강동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지난해 의·정 사태에 응급실 진입장벽이 높아지면서 내원 환자가 30% 가량 줄었다”며 “경증 자살시도자들은 더 작은 병원으로 갔거나 의료기관에 닿지 못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응급실은 일반적으로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역응급의료센터,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나뉜다. 이 중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에서 수용되지 못한 경증 자살시도자는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이송된다. 하지만 병상수가 300개 이하인 종합병원급 기관에선 정신건강의학과를 따로 두지 않으므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할 수 있다. 한 119 구급대원은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이송하더라도 찢어진 상처를 꿰매는 정도의 단순 봉합에 그친다”면서 “보호자에게 인계하는 현장 처치로 마무리하면 실질적으로 조력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토로했다.


사후관리도 미흡하다. 복지부가 운영하는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에 참여하는 응급실 92곳 가운데 지역응급의료기관은 3곳에 불과하다. 지난해 92곳의 응급실에 내원한 전체 자살시도자 3만309명(중복포함) 가운데 지역응급의료기관에 온 자살시도자가 188명(0.6%)에 불과할 정도다. 더구나 지역응급의료기관에 이송된 경증 자살시도자는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는다. 지역응급의료기관은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에 자해·자살 관련 통계 제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자살시도자는 재시도 가능성이 큰 고위험군이어서 응급실 내원 단계부터 사후관리까지 공백이 없도록 관리해야 하지만 곳곳에 허점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전체 응급의료기관을 아우르는 촘촘한 연계체계를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즉각 추진해야 할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