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애 원장의 미용 에세이] 하와이의 오후

입력 2025-09-25 13:33

온풍기가 돌아가듯 쨍쨍한 햇볕 내리쬐이는 하와이,바닷가 댓돌 위에 물바람은 단숨에 야자수 꼭대기에 올라서더니 스물세 가닥 혹은 마흔두 가닥 녹색 옷자락을 펄럭인다. 와이키키의 짙푸른 하늘이 송두리째 바다에 잠수해 버린 것인지. 푸른 잉크 빛 바닷물은 가라앉은 하늘빛과 뒤엉키어 짙은 에메랄드 색으로 바뀌었다. 천혜의 자연을 찾아든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은 자유를 만끽하고 즐기며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을 찾았을 것이다. 청청하게 버티고 있는 산야와 유구하게 흐르는 강물 속에 스미어 있는 한 많은 얘기들은 역사의 토막마다 새겨 있을 뿐, 그저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시치미 떼고 있는 것일까, 진주만이라 불리는 펄 하버, 이곳 국립 사적지에는 아직 생생한 아픈 역사의 상처들이 남아 있다.

어느 주일 아침 자유롭게 휴식을 즐기던 젊은 미국의 수많은 미래자산인 청년해병들이 전쟁광 일본의 잔악한 침략을 당했다. 일본인들의 침탈로 평화를 잃고 시달리던 나라들 중 우리 대한민국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피해국이다. 20대의 젊은 미국 청년들이 죽어 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나라 미국을 지키려는 숨 막힌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오늘날 세계 패권국인 미국인들은 진주만의 희생자 2300명의 생명을 포함하여 3400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참혹한 그날을 철저히 기억하며 그들을 추모하는 행사를 자자손손 이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희생된 유공자들의 기념을 한층 더 강화하는 지혜로운 국가의 지도자들이 우뚝 서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를 건국한 이승만 대통령의 초라한 기념비 앞에서 나는 그저 부끄럽기만 했다.

“너는 네 나라 대한민국을 위하여 무엇을 희생했느냐.”라는 질책이 내 귓가에 맴돌았다. 우리에게 감사와 존경의 대상은 과연 누구인가. 진주만의 아픔 못지않은 대한민국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 아직 안전한 국가에 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자유를 누리기 위해 목숨을 내어 준 순국선열들에 대한 감사가 새삼 절절히 밀려왔다.

와이키키 해안의 바람은 언제 상륙했는지 시작도 끝도 없이 불어 댄다. 물결 위로 솟구쳐 오른 파도를 가르고 시원한 물바람이 날아들더니 내 머리를 홀딱 뒤집고 종횡무진 질주한다. 눈 씻고 찾아도 매연을 뿜어내는 에어컨 실외기가 없는 휴양지이다. 바다 끝에서 뜨는 쌍무지개는 하늘에 신비한 원을 만들며 명화를 그려 낸다.

하와이에서 보낸 일련의 일상은 자유를 얻기 위해 마땅히 지불해야 하는 의무와 가치를 깊이 묵상하는 뜻깊은 여행이었다.


<과수원>
-김국애

양지쪽 사과밭
봉지 속에 매달린 향기

곱게
흠집 없이 키워 내고픈
주인의 애타는 마음도
함께 싸매었겠지,

나는
가려 주며 덮어 주었을 뿐
맥박이 뛰고 혈액이 돌며
살아서 버텨온 것
저절로 되는 일이었을까

포근히
어루만지는 구름
깊은 잠 깨워 주는 바람
태양의 저 온화한 빛이 있어
영글어진 고마운 열매

◇김국애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계간 현대수필 운영이사, 수필집 ‘길을 묻는 사람’ 저자. 이메일 gukae8589@daum.net
정리=

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