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설킨 금리·심리·규제…‘뉴노멀’ 향하는 아파트 전세의 월세화

입력 2025-09-24 18:53

아파트 임대차 시장의 월세화 속도가 빨라질 조짐이다. 한국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의 월세화’는 빌라 등 비(非)아파트 시장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제 아파트도 이 추세에 올라탔다. 비아파트 시장에서는 전세사기가 월세화에 불을 붙였다면, 아파트 시장 변화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금리·심리·규제가 얽히고설켜 있다. 한국의 독특한 전세제도가 아파트 임대차 시장에서까지 변화를 맞으며 ‘월세 뉴노멀’을 만들어 가고 있다.

24일 국토교통부 주택통계에 따르면 지난 1~7월 전국 아파트 임대차 거래 중 월세(보증부월세‧반전세 등 포함) 비중은 46.4%로 나타났다. 2021년부터 38.0→43.5→44.1→44.8→46.4%로 매년 증가 추세가 확인된다. 같은 기간 비아파트가 48.1→57.4→63.7→69.0→74.2%인 것과 비교해 속도는 더디지만, 비중 확대는 뚜렷하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통해 서울 아파트 임대차 거래 중 신규 계약만 분석한 결과(지난 17일 기준) 올해 7월 서울 월세 비중은 49.47%로 절반에 육박했다. 7월 아파트 임대차 거래의 절반은 월세 계약이었던 셈이다. 전년 동기(41.38%)보다 8% 포인트 높다.

이런 변화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낮은 금리, 꾸준히 우상향하는 아파트값, 까다로워진 전세대출 등이 있다. 예적금 금리가 낮은 상황에서 전세 보증금을 통한 이자 수익은 기대에 못 미친 지 오래다.

집주인 입장에서 이자 대신 월세를 선호하게 되는 금융 환경이 만들어졌다. 아파트 매매가격이 뛰는 것도 전세보증금 부담을 올린다. 전세보증금을 매매가격에 비례해 올리면 세입자 입장에서는 전세보증금 마련이 쉽지 않아진다. 월세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지는 상황이다.

이재명정부가 갭투자 등을 차단하기 위해 전세대출 규제 움직임을 보이면서, 아파트 월세화도 변곡점을 맞았다. 정부는 서울 아파트값 폭등의 원인 중 하나로 갭투자를 지목했다. 6·27 대출규제와 9·7 공급대책을 통해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 금지’ ‘1주택자 전세대출 보증 한도 2억원 일원화’ 등으로 전세대출을 조였다. 전세를 활용한 갭투자를 막으려다 보니 전세대출이 까다로워졌다. 선택지가 월세로 옮겨가는 것이다.

김은선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서울 아파트 임대차 시장은 월세 중심 구조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고,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며 “금리 수준과 전세대출 규제 강화, 보증 한도 축소 등 자금 조달 여건의 변화와 맞물려 나타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아파트 임대차 시장에서는 금리 인하와 전세 품귀 현상 등에 따른 아파트 월세 가속화를 체감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아파트에 반전세로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최근 집주인과 새로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2년간 전세 시세가 올라 계약갱신권을 쓰려 했지만, 집주인이 직접 들어와 살겠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새 계약을 체결하며 기존 보증금 3억원대에 월세 20만원 계약에서 보증금은 그대로 두고 월세를 60만원으로 올려줬다. 이씨는 “집주인이 전세를 5억원으로 올리고 싶어 했는데 전세대출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월세를 더 올려주고 재계약했다”라고 말했다.

이씨 사례는 세입자 여건 때문에 부득이하게 월세를 선택하게 된 경우다. 집주인은 전세 전환을 원했으나 세입자가 보증금을 마련하기 힘들어 임대료를 올리게 됐다. 월세는 임대차 시장에서 많은 경우 ‘차선책’으로 거론되지만, 전세 대신 월세라는 차선책으로 결론이 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이미 많은 아파트가 월세화하고 있는데 현 정부 들어 전세대출이 점점 어려워지는 흐름이어서 월세화는 더 확산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서울 성동구 금호동의 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전세대출이 까다로워지는 만큼 시세에 맞추려면 결국 반전세 형태가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예를 들어 전세보증금 시세가 5억원이었다가 10억원으로 올랐으면 보증금은 그대로 두고, 오른 만큼 월세로 전환해서 받는 경우가 많다”며 “예전 같으면 은행 이자가 높아서 전세금 받아 맡겨뒀을 텐데 요즘은 이자가 적어서 집주인 입장에선 월세 받는 게 이득”이라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한 부동산 모습. 연합뉴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준금리는 2021년 7월 0.50%에서 2024년 8월 3.50%까지 올랐지만, 이후 4차례 금리 인하를 거치며 2.50%까지 내려왔다. 최근 미국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인하하면서 한국도 추가 인하 가능성이 있다.

전세 품귀현상도 지속하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 서울 아파트 전세매물은 3만1814건이었으나, 9월 24일 기준 2만3922건으로 24.81% 감소했다. 서울 송파구의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최근 매물만 봐선 월세가 6, 전세가 4 정도”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 랠리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주간아파트가격동향에 따르면 9월 셋째 주(15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0.07%를 기록했다. 올해 2월 첫째 주(3일 기준) 이후 33주 연속 상승 중이다. 부동산원은 “정주여건이 양호한 역세권·학군지 등 주요 단지 위주로 상승계약 체결되는 등 서울 전체가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월세화 흐름 속에서 ‘월세 100만원 이상’ 고액 월세 계약 비중도 늘어나는 추세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9월 24일 서울 신규 월세 거래는 4만5659건으로 전체 임대차 계약(9만9463건)의 45.9%에 달했다.

이중 월세가가 100만원 이상인 거래는 2만1581건으로 전체 월세의 47.2%를 차지했다. 2024년 1년간 월세 100만원 이상 계약 건수는 2만9874건으로 전체 월세(7만3532건)의 40.6%로, 올해가 약 6.6% 포인트 높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고액 월세 비율이 높았다. 강남은 2683건으로 전체의 12.4%였고 서초(2170건)가 10%, 송파(1943건)가 9%를 기록했다. ‘마용성’은 성동(1789건)이 8%, 마포(1357건) 6%, 용산(804건) 0.37%를 차지했다. 강남 3구와 마용성 6개 구가 49.7%로 100만원 이상 고액 월세의 절반을 차지한 셈이다.

권중혁 정진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