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삶 시작하려 자녀 살해”…‘가방 시신 사건’ 한인 엄마 유죄

입력 2025-09-23 15:09
어린 두 자녀를 살해해 여행 가방에 유기한 혐의로 기소된 뉴질랜드 시민권자 이모씨가 지난 8일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고등법원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해 있는 모습. AP뉴시스

7년 전 뉴질랜드에서 어린 자녀 2명을 살해한 뒤 여행 가방에 시신을 유기한 한인 여성이 현지 법원에서 유죄 평결을 받았다.

AP통신에 따르면 뉴질랜드 오클랜드 고등법원 배심원단은 23일(현지시간) 자신의 자녀들을 살해한 뒤 수년간 방치한 혐의로 기소된 이모(44)씨에 대해 유죄 평결을 내렸다.

이씨는 향후 재판에서 최대 종신형과 최소 10년 가석방 불가 기간을 선고받을 수 있다.

배심원단은 이씨가 지난 2018년 6월쯤 당시 9살 딸과 6살 아들에게 항우울제를 넣은 주스를 먹여 숨지게 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이씨는 2017년 남편이 암으로 숨진 뒤 약 7개월 만에 자녀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자녀들 시신을 여행 가방에 넣어 오클랜드 한 창고에 보관한 채 한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의 변호인들은 이씨가 자녀들에게 항우울제를 줘 숨지게 한 사실관계는 인정했다. 다만 당시 남편의 사망으로 인한 충격으로 우울증에 걸렸고 심신미약 상태였기에 살인 혐의는 무죄라고 주장했다.

변호인들은 이씨가 온 가족이 목숨을 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자녀에게 항우울제를 먹였다고 주장했다. 이씨도 항우울제를 먹었지만 복용량을 잘못 계산해 깨어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배심원단은 이씨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지 검찰은 이씨가 우울증을 앓았을 가능성이 크지만 심신미약을 뒷받침할 만큼 심각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씨가 자녀들 없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냉정한 이기심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과거 뉴질랜드로 이주해 현지 시민권을 얻었다. 범행 후 2018년 하반기에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개명을 신청해 이름을 바꾼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2022년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자녀들 시신을 유기한 창고의 임대료 납부를 중단했다. 같은 해 8월 창고 보관 물품이 온라인 경매에서 낙찰됐고 가방에서 아이들 시신을 발견한 현지 주민이 경찰에 신고했다.

한국 경찰은 언론에 이 사건이 보도된 후 ‘A씨가 용의자와 비슷하다’는 첩보를 받고 조사를 진행했다. 이씨는 같은 해 9월 울산에서 검거됐고 범죄인 인도 절차에 따라 뉴질랜드로 송환됐다.

이씨의 재판은 지난 2주간 진행됐다. 이씨는 재판 동안 법정에서 고개를 숙이고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침묵을 지켰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