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동남부 산악지대에서 시리아 북부, 이라크 북부를 거쳐 이란 서부까지 중동의 심장부에 자리한 이 광활한 땅은 ‘쿠르디스탄(쿠르드인의 땅)’이라 불린다. 하지만 지도 어디에서도 쿠르디스탄이라는 국가는 찾을 수 없다. 2500만명에서 4000만명 가량으로 추산되는 쿠르드족은 튀르키예와 시리아 이라크 이란 아제르바이잔 등 5개국에 흩어져 살면서도 자신들만의 국가를 갖지 못한 채 각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에게는 ‘친구 없는 산족’이라는 씁쓸한 별명이 있다.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억압받은 역사 때문이다. 1988년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의 독가스 공격으로 쿠르드족 5000여명이 학살당한 ‘할라브자 대학살’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IS(이슬람국가)가 쿠르드족을 주요 살상 목표로 삼아 무차별 테러를 자행했다.
절망의 땅에서 피어난 복음의 꽃
그런데 지난 10여년간 중동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 시리아 내전과 IS 사태 이후, 구호 활동과 교류를 통해 쿠르드족 중 일부에서 기독교로의 개종 현상이 관찰된다는 점이다. 시리아 내전 이후 현재까지 세례받은 쿠르드족만 최소 1만명에서 5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레바논에서 25년간 중동 사역을 펼친 쿠르드선교회 대표 김성국(57) 선교사는 2014년부터 시리아 난민들을 대상으로 구호사역을 펼치던 중 이 현상을 직접 목격했다.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만난 김 선교사는 “처음에는 쿠르드도 여러 난민 부족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런데 빵과 복음을 함께 나누는 사역을 하면서 발견한 것은 다른 부족들은 빵만 받고 복음은 거부하는 반면 쿠르드족만은 복음을 받고 실제로 반응한다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팬데믹으로 교회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을 때 교회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오직 쿠르드족뿐이었다”고 설명했다.
왜 쿠르드족일까
IS의 잔혹한 학살을 경험하며 실존적 위기에 빠진 쿠르드족이 난민이 되어 기독교 구호단체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처음으로 복음을 접하게 됐다.
김 선교사는 “쿠르드족이 이때 들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는 말씀에 큰 충격을 받는 것 같았다”며 “이슬람으로부터 핍박받은 이들에게 이슬람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는데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신선하게 다가온 것”이라고 했다.
더욱 주목할 점은 쿠르드 기독교 부흥이 젊은 세대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교회가 고령화와 주일학교 감소로 고민하는 상황과는 정반대다. 레바논 아랍침례신학교(ABTS)의 온라인 신학 과정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중 절반 이상이 모두 쿠르드족 출신이라고 한다.
시리아 북서부 아프린 지역은 특별한 부흥 지역으로 꼽힌다. 현재 세계 각지에서 사역하는 쿠르드족 리더들 중 대부분은 이 지역 출신이라고 김선교사는 전했다. 이 지역이 성경의 ‘수리아 안디옥’(행 11:26)과 인접한 곳이라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초대교회 부흥의 재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위험을 무릅쓰는 선교 열정
쿠르드 기독교인들의 또 다른 특징은 극한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선교 열정이다. 한국 등 다른 나라 선교사들이 안전을 이유로 철수하는 상황에서도 이들은 오히려 위험지역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한다.
김 선교사는 “한국 여권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시리아와 이라크에서도 쿠르드 목회자들은 마음껏 예배드리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며 “위험하니까 속히 귀국하라는 긴급 문자가 오가는 그 와중에도 태연하게 재난과 전쟁의 현장을 누비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빵과 복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쿠르드 기독교인들이 전 세계로 흩어지면서 각지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독일, 미국, 캐나다 등으로 이주한 쿠르드 기독교인들이 현지에서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김 선교사가 지난해 방문한 캐나다 캘거리에서는 레바논에서 이주한 쿠르드 개종자들이 큰 교회 그룹을 이뤄 교회를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15년 전 다 무슬림이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목사가 되어 각국에서 사역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은 한국교회에도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최근 서울 명성교회와 여의도순복음교회, 광주순복음교회에서 세 차례 열린 ‘제1회 국제쿠르드포럼’에는 캐나다와 튀르키예, 시리아, 레바논에서 온 쿠르드 목회자 6명과 50년간 쿠르드를 섬긴 미국 선교사, 30년 사역한 스위스 선교사 등이 참석했다.
김 선교사는 “과연 한국교회가 언제까지 선교사를 파송할지, 한국교회가 몇 년을 버틸 수 있을까”라는 솔직한 고민을 털어놨다. 실제로 해외 한인교회들의 평균 연령은 70대를 넘어서고 있고 차세대 부족으로 존립 위기에 직면한 교회들이 늘고 있다.
반면 쿠르드교회는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되어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김 선교사는 “우리가 가진 모든 유산을 이들에게 넘겨주는 것이 선교의 완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일 것”이라고 전했다.
글·사진=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