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에 다시 피어난 웃음과 회복의 여행

입력 2025-09-23 10:08 수정 2025-09-24 16:37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유재수)가 GKL사회공헌재단(이사장 이재경)과 함께 진행한 '우리가족 행복여행'에 참여한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이 최근 전남 순천시 순천만국가정원에서 찍은 단체 사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내고도 생명을 나눈 유가족들이 가을빛 자연 속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치유와 위로의 시간을 가졌다.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유재수)는 GKL사회공헌재단(이사장 이재경)과 함께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도너패밀리) 18가정 34명을 초청해 ‘우리가족 행복여행’을 진행했다고 23일 밝혔다. 지난 5월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이번 여행은 유가족이 같은 아픔을 나누고 회복의 발걸음을 내딛도록 돕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전남 순천·여수 일대에서 진행된 여행에서 참가자들은 낙안읍성·순천만습지·와온해변, 여수 오동도 등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명소를 탐방했다. 모닝 요가, 테라리움 만들기 체험, ‘허윤정트리오’의 정원음악회 등 힐링 프로그램도 함께 마련됐다.

이번 여정에는 각기 다른 사연을 품은 도너패밀리가 함께했다. 2020년 뇌출혈로 아들을 떠나보내고 7명에게 장기를 기증한 김보근(80)씨는 “아들이 새 생명을 선물했지만 제 삶은 끝없는 슬픔 속에 갇힌 듯했다”며 “이번 여행을 통해 가족과 웃으며 앞으로의 날들을 지켜낼 힘을 얻고 싶었다”고 말했다.


홀로 다섯 남매를 길러낸 김옥진(66)씨는 2019년 첫째 딸을 뇌사로 잃은 뒤 남은 자녀를 돌보느라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그는 “같은 아픔을 지닌 도너패밀리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며 “따뜻한 추억을 쌓고 서로의 마음을 보듬으며 지난 세월을 위로하고 싶다”고 전했다.

2012년 세 명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떠난 김준표씨의 누나 김연정(54)씨는 치매 진단을 받은 어머니와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그는 “13년 만에 웃으시는 어머니 모습을 보게 돼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동엽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상임이사는 “도너패밀리는 깊은 슬픔 속에서도 장기기증을 결단해 수많은 환자와 가족에게 새로운 희망을 선물한 분들”이라며 “이번 여행이 유가족이 상실의 아픔을 넘어 치유와 회복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