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의 부자재를 공장에서 미리 만들고 현장에선 조립만 하는 탈현장(OSC·Off-Site Construction) 공법이 재조명받고 있다. OSC 공법은 산업재해 예방·처벌 기조 강화, 현장 근로자의 고령화, 외국인 근로자 확대 등 현장 작업과 품질관리의 어려움이 많아지면서 대안으로 떠오른 방식이다. 9·7 대책에 OSC 공법의 일환인 ‘모듈러 주택 활성화’가 담기면서 최근 주목도가 더욱 높아졌다.
대형건설사들은 OSC 분야가 향후 ‘뉴노멀’이 될 것으로 보고 관련 기술을 개발해왔다. 롯데건설은 지난 2년간 출원한 ‘PC 모듈러 공법’ 및 ‘PC 공법’ 관련 특허 14개가 모두 등록됐다고 22일 밝혔다. PC(프리캐스트 콘크리트) 공법이란 콘크리트 부재를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을 말한다.
PC 모듈러 공법은 PC로 완성형 3D 부재(방, 화장실 등의 공간을 만든 구조물)를 제작해 현장에서 결합만으로 시공을 완료한다. 롯데건설은 PC 모듈러를 현장에서 결합하는 기술과 PC 모듈러 내에 내장재를 미리 설치할 수 있도록 운송 시의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설계 방식을 개발했다.
현대건설은 지난 3월 국내 건설사 최초로 주거용 건물에 적용할 수 있는 ‘PC 라멘조’ 기술 인증을 획득했다. 라멘조는 기둥과 보가 슬래브(판 형태의 구조부재)를 지지하는 구조다. 일반적인 아파트에 쓰이는 벽식구조(벽체가 건물의 하중을 지지)와 다르다. 라멘조는 기둥과 보를 통해 바닥 진동이 분산될 수 있는 구조라 층간소음 저감에 효과적이다.
GS건설은 2020년부터 PC 제조 자회사인 GPC와 목조 모듈러 전문 자회사인 자이가이스트를 설립해 OSC 공법의 확대를 적극 추진해왔다. 이밖에도 삼성물산, DL이앤씨, GS건설,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등 대형건설사들은 2021년부터 모듈러 관련 기술 특허 출원에 속도를 높여왔다. 모듈러 주택 시장 규모가 성장할 것으로 예측해서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2018년 123억원이던 모듈러 주택 시장은 2023년 8055억원으로 커졌고, 2030년에는 2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조봉호 아주대 건축학과 교수는 “국내 대형건설사들도 OSC는 ‘정해진 미래’라고 보기 때문에 관련 기술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국내 건설사들의 기술 수준이면 OSC로 고층화도 가능하지만, 조금 더 기술 개발이 필요하고 미비한 제도의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OSC 분야에 관심을 두면서 시장 활성화 및 고층화 기반도 조금씩 마련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OSC 공법을 통한 주택 공급 방식으로 크게 모듈러 주택과 PC 주택 2가지에 주목하고 있다. 앞서 국토부는 2030년까지 OSC 공법을 활용한 공공임대주택을 연간 3000가구 발주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LH는 내년부터 2029년까지 매년 3000가구, 2030년 이후엔 매년 5000가구 규모의 모듈러 주택 발주를 계획 중이다. 지난 7일 발표된 주택공급 대책엔 모듈러 주택 공급 활성화를 위한 제도 기반 마련, ‘OSC·모듈러특별법’(가칭) 제정 등이 담겼다.
건설업계와 정부가 OSC 공법에 주목하는 건 기존 철근콘크리트(RC) 방식보다 적은 인원으로, 빠르고 안전하게 건물을 지을 수 있어서다. 또 탄소배출량이 줄어 친환경적이고, 규격화된 공장에서 미리 만들어지기 때문에 건축물의 품질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장점도 있다. 현장 작업이 많지 않아 사고도 적다. 최병주 아주대 건축학부 교수가 연구한 내용에 따르면, OSC 공법의 일환인 모듈러 건축은 RC 대비 산업재해는 85%, 사망사고는 100%가 적었다.
그럼에도 OSC 공법 기반의 주택은 정부 발주의 공공주택이 대부분이었다. 모듈러 공법으로 지어진 ‘용인 영덕 경기행복주택’, PC 공법으로 건설된 ‘평택고덕 15단지’ 등이다. 표준화와 대량생산 체계가 이뤄지지 않아 기존 RC 대비 공사비가 비싼 영향이 컸다. 또 현장 건설 중심으로 만들어진 분리발주 규제가 OSC 공법과는 맞지 않는 등 규제의 장벽도 있다. 모듈러의 경우 공장에서 내장재와 설비를 설치해서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이준성 이화여대 건축도시시스템공학과 교수는 “OSC는 제조업의 개념을 건설 현장에 적용하는 것이라 이 공법이 정착하려면 생태계 조성이 필수적”이라며 “건축물의 용도와 주변 환경, 규모 등에 따라 소재와 공법을 선택해 적절히 적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영역의 역량을 높여야 한다. 생산 방식의 전환이 이뤄지는 만큼 관련 제도들도 잘 바꿔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