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이 새만금 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을 인용하면서 그 여파가 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에도 미칠지 주목된다. 법원이 조류충돌 위험성과 생태계 훼손 가능성을 주요 사유로 판단한 만큼, 유사한 환경적 쟁점을 안고 있는 제주 제2공항에 대한 반대 여론이 다시 고조되는 분위기다.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는 22일 오전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토부가 작성한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 조류충돌 위험이 의도적으로 축소됐다고 주장했다.
비상도민회의는 “2023년 환경부가 조건부 동의해 통과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에서는 제2공항의 조류충돌 위험성이 현 제주공항의 최대 8.3배, 무안공항의 최대 229배로 제시됐지만, 2021년 평가서에서는 각각 20배, 568배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같은 반경 13㎞ 내에서 실시된 조사임에도 결과가 달라진 이유로, 국토부가 2023년 평가서에서 ‘불명’ 조류의 충돌 건수를 전부 제외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불명’ 조류는 비행기와 충돌은 했으나 잔여물이 없어 종을 식별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2008년부터 2021년까지 국내 공항에서 발생한 총 3031건의 조류충돌 가운데 88%인 2667건이 ‘불명’으로 분류된다.
비상도민회의는 “조류충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불명’을 제외하면서 제2공항의 연간 충돌 횟수가 2021년 10~35회에서 2023년 4~14회로 산정 규모가 크게 줄었다”고 주장했다.
비상도민회의는 조류충돌 위험 정성평가에 대한 축소 의혹도 제기했다.
2021년 평가서에서 고위험종으로 분류됐던 23종 가운데 2023년 평가서에는 흰뺨검둥오리, 꼬마물떼새, 알락할미새, 물수리, 꺅도요 등 5종만이 고위험종으로 제시됐다.
비상도민회의는 국토부가 새의 크기, 무게, 군집 정도로 충돌 심각성을 반영하지 않고, 국내 공항에서 발생한 종별 충돌 건수 대비 피해 건수를 기준으로 평가했다고 비판했다.
비상도민회의 관계자는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는 환경부가 한 차례 반려하고 여러 차례 보완을 거쳐 조건부 통과됐지만, 평가 과정이 여전히 논란”이라며 “이번 발표에서 조류충돌 위험성을 축소·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수행한 업체는 새만금 신공항 평가에서도 조류 이동성 조사와 충돌 위험성 평가를 맡았으며, 현재 국토부가 진행 중인 제주 제2공항 환경영향평가도 동일 업체가 수행 하고 있다”면서 “무안공항 참사 이후 조류충돌 위험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 만큼 제주 제2공항도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11일 서울행정법원은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 공동행동’ 소속 시민 1300여명이 국토부를 상대로 제기한 ‘새만금 개발사업 기본계획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공동행동 측은 즉각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인용될 경우 항소심 확정 전까지 모든 행정·개발절차가 중단된다. 전북도는 항소심에서 보조참관인으로 참여해 1심의 핵심 쟁점이었던 ‘조류충돌 위험성’의 판단을 뒤집는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 예정지 반경 13㎞ 이내에는 제주 최대 철새도래지인 하도를 포함해 총 4곳의 철새도래지가 위치해 있다.
국토부는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 550만6201㎡ 부지에 길이 3200m·폭 45m 활주로와 항공기 28대를 동시 주기할 수 있는 계류장, 여객터미널 등을 건설할 계획이다.
지난해 9월 기본계획 고시로 사업이 확정됐으며, 현재 기본설계 용역과 환경영향평가 조사가 내년 하반기 완료를 목표로 진행 중이다.
한편 최근 이재명 정부가 확정한 123개 국정과제에서 제주 제2공항을 포함한 신공항 건설계획의 명칭이 제외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과제에는 구체적인 공항 명칭 대신 ‘신공항 사업 추진’이라는 표현만 담겼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