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22일 “세종대왕은 공법 시행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민심을 수렴해 백성의 뜻을 반영하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정부와 여당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사법개혁 법안에 사법부 의견수렴 등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대법원 입장과 맞닿은 대목으로 풀이된다.
조 대법원장은 22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5 세종 국제 콘퍼런스 개회사에서 “세종대왕께서는 소통과 상생의 가치를 중시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세종대왕은) 백성과의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했고 국정 운영에서는 신하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필요한 경우 심도 있는 토론을 통해 올바른 결론에 이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며 “법의 공포와 집행에 있어서 백성들에게 충분히 알렸다”고 강조했다.
조 대법원장의 이런 발언은 최근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사법개혁 법안의 논의 과정에 대법원이 밝힌 입장과 결을 같이 한다. 앞서 조 대법원장은 지난 12일 “사법의 본질적인 작용과 현재 사법 인력의 현실에서 어떤 것이 가장 국민에게 바람직한지를 공론화를 통해 충분히 논의가 이뤄지면 좋겠다는 것이 대법원의 생각”이라며 “입법 과정에서 대법원 의견이 반영되도록 국회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열린 법원장회의에서 법원장들도 “사법제도 개편은 국민과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돼 추진돼야 한다. 이를 위해 폭넓은 논의와 숙의 및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 대법원장은 또 “세종대왕은 법을 왕권 강화를 위한 통치 수단이 아니라 백성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규범적 토대로 삼으셨다”며 “백성을 중심에 둔 세종대왕의 사법 철학은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법의 가치와도 깊이 맞닿아 있다”고 밝혔다. 이어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법치와 사법 독립의 정신을 굳건히 지켜낼 지혜를 나눌 수 있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날부터 이틀간 열리는 이번 행사는 2016년 이후 9년 만에 대법원이 개최하는 국제 행사다. 대법원은 이날 행사를 통해 세종대왕의 법사상을 세계와 공유하고 법치주의의 미래와 사법의 발전 방향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행사에는 싱가포르·일본·중국·필리핀·호주·그리스·이탈리아·라트비아·남아프리카공화국·몽골·카자흐스탄 등 10여개 국가의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모였다. 국제형사재판소(ICC) 전·현직 소장과 재판관 등도 참석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