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수주의 청년 활동가 찰리 커크를 기리는 추모식에서 커크의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범인을 용서한다고 밝혔다. 21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의 스테이트팜 스타디움에서 열린 추모 행사에는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이 총출동한 가운데 찬송가와 신앙에 관한 메시지가 흘러넘치면서 부흥회 같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앞서 추모사를 한 커크의 아내 에리카는 남편을 살해한 용의자 타일러 로빈슨을 용서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에리카는 “아버지여, 그들을 용서하소서. 그들이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라는 예수님의 십자가 발언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그를 용서한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기 때문”라며 “증오에 대한 해답은 증오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생명을 앗아간 바로 그와 같은 젊은이들을 구하고 싶어 했다”고 덧붙였다.
그의 발언에 추모식 참석자 대부분이 기립해 박수를 보냈다. 그는 커크가 설립한 ‘터닝포인트USA’의 유산을 이어가겠다며 “찰리의 비전과 노력으로 터닝포인트USA가 이룬 모든 것을 우리는 열 배 더 크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에리카는 추모사 뒤 무대에서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추모사에서 커크를 ‘순교자’라고 불렀다. 그는 “찰리 커크는 천국의 영광 속에 영원히 잠들어 있다”며 “찰리는 우리에게 단순한 정치적 재정렬이 아니라 영적 각성이 필요하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잃어버린 친구이자 리더를 애도하지만, 그의 신앙으로 힘을 얻고 용기로 북돋우며 그의 모범으로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며 찰리에게 대통령 자유훈장을 수여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특히 “찰리는 자신의 반대자들을 미워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최선이 있기를 바랐다. 그 점에서 나는 찰리와 의견이 달랐다”며 “나는 내 반대자들이 싫고, 그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길 바라지 않는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또 “한국 서울에선 군중이 모여 성조기를 흔들며 ‘우리는 찰리 커크를 지지한다’고 소리쳤다”고 전했다. 커크는 암살 직전 서울을 방문해 보수주의 행사에 참석한 바 있다.
추모 행사에는 트럼프 외에 J D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장관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장 등 핵심 각료들이 총출동했다. 이들은 모두 연단에 올라 커크를 향한 추모사를 했다.
J D 밴스 부통령은 “우리에게서 찰리를 빼앗아간 자는 오늘 우리가 장례식을 치를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는 찰리 커크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리는 부흥회와 축하를 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 행정부 전체가 여기 모였지만 단순히 친구로서 찰리를 사랑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없이는 우리가 여기 있을 수 없었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라며 “찰리는 우리 정치의 균형을 재편한 조직을 구축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이라는 진리를 가져왔다”며 “우리는 그가 미국의 영웅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기독교 신앙을 위한 순교자”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스데반의 순교와 찰리의 죽음을 비교하기도 했다. 그는 “비겁한 암살자가 찰리의 삶을 끝냈을 때, 나는 찰리가 집으로 돌아오는 자신을 맞이하기 위해 서 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보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그는 커크가 암살되기 전 자신에게 “나는 용기와 신앙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며 “우리 모두가 찰리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기독교인이었던 커크를 기리기 위해 연설 중간중간에는 찬송가가 흘러나왔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추모식에 대해 “보수적 기독교가 트럼프 시대의 공화당 정치와 어떻게 융합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정점의 사건”이라고 했다.
평소 공개 연설을 거의 하지 않았던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도 연단에 올랐다. 그는 2024년 대선 당시 청년층의 트럼프 지지를 이끈 커크에 대해 “우리 시대 가장 강력한 청년 운동”을 구축했다며 “찰리는 단순히 도움을 준 게 아니라 승리를 결정짓는 차이를 만들었다”고 했다. 와일스 비서실장은 연설 도중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스티브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도 연설에 나서 “사악함과 악의 세력에 맞서겠다”고 했다.
이날 추모 행사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트럼프와 나란히 앉아 있기도 했다. 머스크는 지난 5월 정부효율부(DOGE)에서 물러난 뒤 이민정책 등을 들어 트럼프를 맹비난하면서 정치적으로 결별했다. 하지만 이날 머스크가 트럼프 옆자리에 앉아 귓속말을 나누고 악수를 하기도 했다. CNN은 “커크는 머스크와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불화를 겪은 뒤 양측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했다”며 “커크는 머스크와 계속 연락하며 자주 문자를 보냈는데, 특히 정책에 대한 머스크의 부정적 발언이 트럼프의 전반적인 의제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스티브 배넌, 로라 루머 등 마가 운동의 핵심 인사들도 추모식에 참석한 가운데 이날 스테이트팜 스타디움 안팎의 추모 인파는 20만명에 달했다고 뉴욕포스트가 전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