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카네기홀 서는 정경화 “콩쿠르 우승부터 특별한 곳”

입력 2025-09-22 04:30
원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최근 서울 종로구 크레디아클래식클럽에서 열린 ‘정경화 & 케빈 케너 듀오 리사이틀’ 기자간담회에서 활짝 웃고 있다. (c)크레디아

“카네기홀에 20번 정도 섰는데, 각각의 공연을 다 기억하지는 못해요. 하지만 카네기홀에서 열린 레벤트리트 콩쿠르 본선 무대는 잊을 수가 없어요.”

원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77)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크레디아클래식클럽에서 열린 ‘정경화 & 케빈 케너 듀오 리사이틀’ 기자간담회에서 오는 11월 8년 만의 뉴욕 카네기홀 공연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정경화는 1967년 권위 있는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이스라엘 출신 핀커스 주커만과 공동 1위를 차지하며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지난 2017년 데뷔 50주년을 기념해 카네기홀에서 기념공연을 가진 바 있다.

“레벤트리트 콩쿠르 당시 제 연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싶었는 데요. 당시 카네기홀의 음향이 기가 막혔어요. 음향이 자연스러웠고, 작은 소리가 홀의 끝까지 섬세하게 전달됐어요. 그런 훌륭한 홀에서 연주할 때 정말 행복합니다.”

정경화는 레벤트리트 콩쿠르 우승 이후 세계 주요 콘서트홀의 러브콜을 받는 한편 다수의 명반을 발매하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정경화는 20대에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6곡)이 아닌 일부를 음반에 담은 적 있다. 하지만 “젊었을 때 할 곡이 아니다. 평생을 걸쳐서 완성된 후 발매를 해야겠다”며 2016년이 되어서야 전곡 음반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듬해 카네기홀 데뷔 50주년 콘서트에서 전곡 연주를 선보였다. 카네기홀의 125년 역사에서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하루에 연주한 것은 정경화가 처음이었다.

원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가 최근 서울 종로구 크레디아클래식클럽에서 열린 ‘정경화 & 케빈 케너 듀오 리사이틀’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c)크레디아

“1961년 미국 유학을 갔을 때 선생님이 준 악보가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였어요. 항상 전곡을 연주한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너무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라 오랫동안 꿈으로만 가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5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실현할 수 있었어요.”

8년 전 카네기홀에서 혼자 무대에 섰던 정경화는 이번엔 오랜 음악 동반자인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함께한다. 케너는 1990년 쇼팽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차지한 미국 출신 피아니스트다. 영국 왕립음악원 교수와 마이애미대 프로스트 음악원 교수로 후학을 양성해왔으며, 쇼팽 콩쿠르와 부조니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교육자이자 권위자로서도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2011년부터 케너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정경화는 그를 “영혼의 동반자”라고 표현할 만큼 깊은 음악적 신뢰를 보여주고 있다. 정경화는 “나는 직관적인 성격인 데 비해 케빈은 학자처럼 분석적이다. 케빈의 의견을 신뢰하는 만큼 내가 좀 더 섬세하게 공부하게 된다”고 밝혔다.

정경화와 케너는 우선 오는 2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을 비롯해 평택 남부문화예술회관(13일), 고양아람누리(21일), 통영국제음악당(26일)에서 국내 투어를 진행한 뒤 11월 북미로 무대를 옮긴다. 그리고 매사추세츠 우스터 메카닉스홀(2일)을 시작으로 뉴저지 프린스턴 매카터 극장(5일), 뉴욕 카네기홀(7일), 캐나다 토론토 코너홀(9일) 등에서 공연이 예정돼 있다. 정경화는 “최근 다리 부상을 입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연주를 다시 한다는 것 자체가 감회가 남다르다. 오랫동안 바이올린을 직접 연주하지 못하고 머릿속으로만 생각했었다”고 털어놓았다.

원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최근 서울 종로구 크레디아클래식클럽에서 열린 ‘정경화 & 케빈 케너 듀오 리사이틀’ 기자간담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c)크레디아

정경화와 케너가 이번 투어에서 선보일 곡은 슈만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1번 가단조, Op. 105, 그리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3번 다단조, Op.45 그리고 프랑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가장조, FWV 8다. 모두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작품이다. 이 가운데 프랑크의 소나타는 정경화가 특히 사랑하는 작품이다. 2011년 케빈 케너와 첫 호흡을 맞추고 조성진, 김태형, 임동혁 등 여러 피아니스트와 여러 차례 연주해 왔다. 2018년에는 33번째 정규 앨범에서 이 곡을 케빈 케너와 다시 한번 녹음하기도 했다.

“프랑크의 소나타는 20대에 처음 공부했는데요. 이 작품은 프랑크가 외젠 이자이의 결혼식 축하 선물로 써 준 것이에요.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그림 같아요. 케빈과 함께 연주하다보면 마치 인생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요.”

2년 후면 정경화의 세계 데뷔 60주년이다. 그의 향후 계획이 궁금해진다. 그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다만 솔직히 말해서 몸 상태가 좋지 않은 편이기 때문에 좋은 작품을 골라서 연주하고 싶다. 요즘엔 슈만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