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제기한 조희대 대법원장의 이른바 ‘회동 의혹’이 진실 공방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회동 당사자로 지목된 조 대법원장, 한덕수 전 국무총리, 정상명 전 검찰총장, 김충식(최은순씨의 집사로 알려진 인물)이 모두 회동 사실을 부인하면서다. 최초로 회동 녹취록을 제시한 유튜브 매체 열린공감TV는 “허위는 아니지만 보도도 아니었다”며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녹취록을 국회에서 최초로 재생하며 의혹 제기를 주도한 서영교 민주당 의원은 제보의 출처에 대해 “보수 정권 민정”(17일 MBC)이라고 방송에서 언급했지만, 논란이 커진 뒤에는 “최초 보도한 유튜브에 물어보라”(19일 오전 국회)고 했다. 페이스북(19일 오후)에서는 “여권 고위직 관계자”라고도 했다.
서 의원이 받은 제보의 출처는 정확히 무엇이고, 그의 말은 왜 달라졌을까. 국민일보는 그간 회동 의혹과 관련해 서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발언한 내용을 토대로 사실관계를 따져봤다.
분석 결과 서 의원의 발언은 두 가지 제보 내용이 뒤섞여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조 대법원장의 정치개입’이라는 문제의식은 같으나, 회동 여부와 시점 등 구체적 내용이 다른 두 제보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발언했다. 특히 언론은 다시 불거진 ‘회동 의혹’에 초점을 맞춰 질문했는데도, 서 의원이 두 제보 내용을 하나의 이야기로 전하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게다가 녹취 제보의 출처가 열린공감TV(당시 출연진이었던 무소속 최혁진 의원)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숨기고 마치 별도의 제보를 받은 것처럼 설명해 논란도 예상된다.
회동 여부·시점·출처·형태가 다른 '두 제보'
서 의원이 확보했다고 하는 제보는 두 가지다.
①제보 : 계엄 전 조 대법원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이재명 사건을 처리하겠다’고 언급했다는 내용
②제보 : 대선 직전 조 대법원장이 ‘4인 회동’에서 ‘이재명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오면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언급했다는 내용의 녹취 파일
시점도 다르다. ①제보는 내용상 조 대법원장이 윤 전 대통령에게 ‘이재명 사건을 처리하겠다’고 언급한 시점이 2024년 초로 추정된다. 반면 ②제보는 조 대법원장의 4인 회동 시점을 윤 전 대통령 탄핵 직후인 4월 초·중순으로 특정하고 있다.
제보 출처도 명확히 다르다. ①제보 출처는 서 의원 표현에 따르면 “과거(보수) 정권의 민정에 있었던 사람” 또는 “당시(보수 정부) 여권의 고위직”이다. 문제는 언론이 ②제보 출처를 물을 때 이를 명확히 답하지 않고 ①제보 출처를 언급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서 의원은 1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는 ②제보 출처에 대해 “의원실에 녹취가 제보로 왔다”고 답했다.
②제보에 대한 서 의원의 태도도 미묘하게 달라졌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5월 15일 법사위 발언)→“정확하지는 않다”(18일 오전 국민일보 통화)→“신뢰할만한 제보”(18일 오후 국민일보 통화)→“열린공감TV에 나온 것을 출처 표기하고 재생한 것”(18일 저녁 국민일보 통화)→“열린공감TV에 물어보라”(19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는 식이다.
'회동 의혹' 출처는 결국 '열공TV'…일부러 숨겼나
특히 ②제보의 출처가 ‘열린공감TV’로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서 의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의원실에 녹취가 제보로 왔지만 먼저 공개하지는 않았다”며 “이후 열린공감TV에 녹취 파일이 나와서 그 녹취를 법사위에서도 틀게 됐다”고 말했다.
서 의원은 열린공감TV와는 별개의 제보를 받은 것처럼 설명했지만, 서 의원에게 녹취를 전달한 이는 당시 열린공감TV 출연진이었던 무소속 최혁진 의원으로 드러났다. 최 의원은 1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어서 서 의원에게 녹취 파일을 전달했다”며 “제보자 보호 등의 이유로 제보자의 신분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열린공감TV측으로부터 ‘최은순의 지인이고 여권 고위 관계자다.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말했다. 다만 열린공감TV는 “외부 패널인 최 의원이 개별적으로 녹취 내용을 전달한 것일뿐, 열린공감TV 차원의 움직임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열린공감TV를 그대로 인용한 것일 뿐이라고 언급해도 됐는데, 서 의원은 마치 별도의 제보를 받은 것처럼 설명한 것이다. 사실상 ‘한 몸’처럼 움직였지만 열린공감TV의 신뢰성이 공격을 받자, ‘회동 의혹’을 제기하기 위해 녹취 출처가 열린공감TV라는 점을 의도적으로 숨긴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앞서 열린공감TV측은 “녹취록 공개 전에는 서 의원과 연락한 적 없다”며 방송 전에 별다른 교감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었다.
녹취의 출처에 대해 함구하던 서 의원은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 녹취 또한 과거 여권 고위직 관계자로부터 제보된 것이라고 체크했다”고 밝혔다. 이 역시 열린공감TV측의 설명을 서 의원이 인용한 것에 불과하다. 녹취 파일과 관련해서는 4개월간 등장하지 않았던 ‘여권 고위직 관계자’가 처음 등장했다. ①제보와 동일인인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열린공감TV는 회동 사실을 전한 최초의 인물을 정확히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전언의 전언의 전언?
서 의원이 출처를 ‘민정’이라고 밝힌 ①제보의 신빙성은 얼마나 될까.
서 의원이 방송에 출연해서 한 발언을 종합해보면 이렇다. 지난 5월 1일 모 국회의원이 서 의원에게 다가와 “1년 전 식사 자리에서 들었다”면서 “윤석열과 조희대가 만났고 조희대는 윤석열에게 이재명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오면 바로 처리하겠다고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추론 가능한 상황은 크게 세 가지다. 1)민정에 있던 모 국회의원이 윤석열-조희대와 함께 식사하면서 ‘직접’ 들었거나(전언) 2)모 국회의원이 윤석열-조희대와 함께 식사한 민정 라인의 다른 인사로부터 전해 들었거나(전언의 전언) 3)모 국회의원이 민정 라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윤석열-조희대 관련 얘기를 재차 전했들었을 경우(전언의 전언의 전언).
정확히 어떤 수준의 발언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4인 회동’을 제기한 ②제보 역시 최소 ‘전언의 전언’인 것으로 파악됐다. 열린공감TV측에 따르면 녹취 파일 속 발화자(제보자)가 ‘보수 정권의 민정 라인’으로부터 이같은 얘기를 듣고 전한 것이라고 한다.
공교롭게 ①제보와 ②제보의 출처가 ‘보수 정권의 민정 라인’으로 공통점이 있는데, 둘의 관계는 서 의원이나 열린공감TV측 모두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동일인인지 여부도 알 수 없는 상태다.
만약 국민의힘 의원의 제보였다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 지점이 있다. 서 의원은 방송에서 ①제보 출처인 현역 의원의 소속 정당을 일부러 밝히지 않았다. 야당 국회의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야당 의원이라면 제보 출처가 되는 보수 정권 민정 라인과도 가깝다. 서 의원이 밝힌 ‘당시 여권의 고위직’과 연결되기도 쉽다.
게다가 제보자는 “이재명이 대선 후보 되는 일은 없어. 너무 이재명, 이재명 하지 마”(18일 김어준 유튜브)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파기환송 당시는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됐고 당선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아무리 반명계 인사라 할지라도 파기환송 직후 찬물을 끼얹은듯한 당 분위기 속에 ‘친명’ 최고위원이던 서 의원에게 이같은 발언을 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서 의원이 모 국회의원으로부터 ①제보를 들었다는 5월 1일에는 저녁 9시에 국회 본회의가 진행(최상목 당시 부총리 겸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상정)돼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각각 국회 본청에서 의원총회를 연 뒤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국민의힘 의원과 접촉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도 갖춰져 있었다.
야당발 제보일 가능성에 대해 국민의힘 지도부 출신의 한 의원은 “만에 하나 야당 의원이 말한 것을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이라면 정말 ‘농담’으로 한 얘기를 제보로 포장해 스스로 의혹을 키운 꼴”이라며 “제보자가 야당 의원이라면 제보자를 못 밝힐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야당 의원들은 서 의원이 제보 출처로 언급하는 ‘여권 고위 관계자’ ‘보수 정부 민정’ 등을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친윤으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서 의원과 그런 얘기를 할 분위기는 아니었다”며 “본인의 말을 믿게 하려는 술수에 불과해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도 “대통령이 탄핵당한 상황에서 서 의원에게 호의를 갖고 그렇게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했다.
김병기 원내대표, “조희대 회동설, 처음 거론하신 분들이 해명해야”
한편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른바 ‘조희대 회동 의혹’에 대해 “처음에 거론하신 분들이 해명을 하셔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제기한 회동 의혹을 대법원이 정면으로 반박하는 상황에서 책임 있는 조치를 주문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원내대표는 19일 라디오 출연해 “지금 조 대법원장을 비롯한 당사자들이 일제히 부인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최초에 거론하신 분께서 이런 것 때문에 (제기해)했다고 해명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처음으로 말씀하신 분이 그 근거, 경위, 주변 상황, 그런 얘기를 했었던 베이스(토대)가 있지 않겠느냐”며 “그런 것은 좀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의혹 제기 자체는 정치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봤다. 김 원내대표는 “정치 분야에 면책특권을 주는 것은 의혹을 제기하라는 것”이라며 “언론은 그러면 안 되지만 정치라는 부분은 의혹을 제기하면 거기에 대해 어떤 증거 같은 것이 언론을 통해서 확인되고 이러면 이제 수사로 들어가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회동 의혹은 대선 전인 지난 5월 초 친여 성향의 한 유튜브 매체가 제기하고, 서 의원이 국회 법사위에서 언급하며 처음 공론화됐다. 이들이 공개한 녹취록에서 제보자는 ‘전언’ 형태로 조 대법원장, 한덕수 전 총리, 정상명 전 검찰총장, 김충식(최은순씨의 집사로 알려진 인물)씨가 점심 회동을 했으며 이 자리에서 “조 대법원장이 ‘이재명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오면 알아서 처리한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 대법원장, 한 전 총리, 정 전 총장 측이 모두 회동 사실을 부인하며 야당은 ‘정치 공작’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당내에서도 무분별한 의혹 제기로 사법개혁의 동력이 누수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판 이강민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