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대표 중견 제조기업 A사에서 창립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노조가 결성됐지만, 사측과 갈등을 빚으며 지역 산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노조는 사측이 노조 활동을 인정하지 않고 조합원들에게 불이익을 줬다며 부산고용노동청에 부당노동행위 시정을 요구하는 진정을 제기했다. 사측은 노조를 법과 절차에 따라 인정하고 있으며, 복지 축소와 근무 방식 조정은 경영상 불가피한 조치라고 반박했다.
19일 A사 노동조합에 따르면 노조는 지난 7월 출범했다. 전체 직원 450명 가운데 현장직(250명)으로만 구성됐으며, 이 중 220명이 가입해 약 88%의 높은 가입률을 기록했다. 조합원 대다수가 현장 인력이라는 점에서 노사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회사 생산 활동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조는 “사측이 노조 사무실 제공을 거부하고, 복수노조 가입을 권유하며 조합 탈퇴를 종용했다”며 “지난달 학자금 지원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뒤 ‘노조를 탈퇴하면 다시 지급하겠다’고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말 근무를 평일로 돌리고 잔업을 줄여 사실상 임금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노조를 압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조 관계자는 “노조 사무실 제공 거부는 명백히 활동을 제약하려는 조치”라며 “사측은 결정권자가 빠진 채 형식적으로만 교섭에 참석해 실질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노조는 진정을 고발로 전환하는 한편, 오는 25~26일 회사 앞에서 집회를 열어 외부 여론전에 나설 계획이다. 현재 부산고용노동청은 부사장, 사장, 회장 등 경영진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사측은 노조의 주장을 부인하며 경영상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A사 대표는 “노조 설립은 법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고, 협상도 이어지고 있다”며 “학자금 지원은 노조 와해 목적이 아니라 경기 침체와 물량 감소에 따른 일시적 조치로, 경영상 여건이 나아지면 지급을 재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조 사무실 제공과 전임자 인정 요구에 대해서도 “일방적으로 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노사 협의가 필요한 문제”라며 “교섭 과정에서 논의 중”이라고 강조했다. 근무일 변경과 잔업 축소 논란에 대해서는 “보복이 아니라 생산 물량 급감에 따른 불가피한 조정”이라고 반박했다. 실제 이 회사는 한때 월 2만5000t을 생산했으나 최근에는 1만t 수준으로 줄었다. 사측은 “생산 실적이 감소한 상황에서 주말 특근을 유지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노조와 사측은 19일 4차 교섭을 진행했으나 서로의 입장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핵심 쟁점인 노조 사무실 제공과 복지 회복 문제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갈등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A사는 해당 기업은 조선·에너지와 함께 최근 성장세가 두드러진 풍력 산업에도 부품을 공급하는 지역 대표 중견 제조업체다. 대형 단조품 등 중후장대 산업의 핵심 제품을 생산하며 글로벌 공급망과도 연결돼 있다. 그동안 무노조 체제를 유지해 왔으나 올해 처음으로 노동조합이 결성되면서 노사관계의 판도가 크게 달라졌다.
업계에서는 생산직 다수가 참여한 노조의 출범을 주목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단조업은 고도의 기술력과 숙련 인력이 핵심 경쟁력인데 노사 갈등이 장기화하면 생산 차질은 물론 해외 수주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지역 제조업 전반에도 파급효과가 있을 수 있어 노사 모두 협력적 해법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우려했다.
부산=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