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은 특권이 아니라 섬김”…곽안련 선교사의 유산 재조명

입력 2025-09-19 17:08 수정 2025-09-19 17:12
조진모 전 합동신학대학원대 교수가 19일 서울 강남구 유나이티드문화재단 더글라스홀에서 발제 강의하고 있다.

‘선교와 교육의 가교.’

곽안련(찰스 알렌 클락·1878~1961) 선교사의 삶을 압축하는 말이다. 그는 1902년 내한한 뒤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되기까지 40년간 한국교회 현장에서 목회와 신학교육을 동시에 이끌었다. 제1세대 선교사의 뒤를 잇는 동시에 제2세대 선교사의 길을 닦은 곽 선교사는 국내 장로교회의 토대를 놓은 핵심 인물로 평가된다.

한국개혁주의연구소(소장 오덕교 목사)는 19일 서울 강남구 유나이티드문화재단 더글라스홀에서 ‘곽안련 선교사와 한국교회’를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신학자와 목회자, 교계 인사들이 참석해 곽 선교사의 목회와 신학사상을 공유했다.

박응규 아신대 역사신학 명예교수는 곽 선교사의 승동교회 목회 사역을 “성경 중심의 복음을 전하며 사회적 신분 차별을 무너뜨린 목회”라고 평가했다. 그는 “승동교회가 ‘백정교회’라 불릴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곽 선교사는 백정 신자들에게 직분을 맡기며 교회 안에서의 평등을 실천했다”며 “이는 교회가 영적 공동체를 넘어 사회 질서 변혁의 현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고 설명했다.

곽 선교사는 한국 장로교 유일의 목회자 양성기관인 평양신학교 교수로도 헌신했다. 그는 1908년부터 41년까지 실천신학과 기독교교육을 가르쳤다. 박 교수는 “곽 선교사는 학생들에게 거리의 걸인과 병자, 노동자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도록 지도했다”며 “신학교육을 실제 목회 현장과 긴밀히 연결한 살아 있는 신학을 실천했다”고 했다.

조진모 전 합동신학대학원대 교수는 “곽 선교사의 ‘설교학’은 목적을 일관되게 영혼 구원에 뒀다”며 “그는 청중과 단절된 구파적 설교와 교리적 깊이가 결여된 신파적 설교 등 양극단을 넘어 권위, 적응, 목적이란 삼중 구조 속에서 회심과 변화로 이어지는 살아 있는 설교를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강도첩경’ ‘목사지법’ ‘목회학’ 등 50여권을 집필하며 한국교회의 신학적 자산을 쌓아 올렸다

곽 선교사의 직분론은 오늘날에도 의미가 크다. ‘곽안련의 직분론’을 발제한 이신열 고신대 교수는 “곽 선교사는 조선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라는 격동의 시대에 목회자이자 신학자로 서면서 교회 직분을 권위나 특권의 상징이 아닌 공동체를 섬기는 책임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곽 선교사는 학생들에게 교회 안에서 직분을 맡는다는 것은 곧 공동체의 짐을 함께 지는 일임을 가르쳤다”며 “직분자가 교회의 기득권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희생과 헌신을 감당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일깨웠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오늘 한국교회가 직분 세습, 권력화, 직분의 과도한 특권화 문제로 혼란을 겪고 있다”며 “곽 선교사의 가르침은 교회 직분이 권위가 아닌 섬김의 직무라는 사실을 다시 환기시켜 준다”고 강조했다.

글·사진=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