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남구청이 오는 25일 개막하는 고래축제를 앞두고 공무원 300명가량을 내빈 의전에 대거 동원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해외 귀빈이라면 모를까 합창단 등 지역 단체 내빈까지 ‘1대1 전담’을 지시한 것은 사실상 강제 동원에 의한 ‘보여 주기 식 행사’를 진행하려 한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19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남구청은 최근 각 부서에 공문을 보내 ‘제29회 울산고래축제’ 기간 의전 지원 근무 대상자를 지정하고 사전 교육 일정을 공지했다. 공문에 따르면 국내외 교류 도시 영접 38명, 내빈 1대1 의전 217명, 개막식장 안내 39명 등 총 294명이 배치된다. 교육은 22~23일 구청 6층 대강당에서 열리며, 의전 시 유의 사항 등이 전달될 예정이다.
남구청에 따르면 이번 고래축제에는 해외 우호·자매도시 인사 등 VIP 106명과 국내 내빈 270명 등 총 430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200명은 1대1 전담 의전, 나머지는 그룹 의전으로 운영된다.
국민일보가 확보한 ‘2025 울산고래축제 의전 지원 근무자 명단’에 따르면 합창단, 학회, 포럼, 문단 등 각종 단체에서 참석하는 내빈들을 건축허가과, 녹지과, 기획예산과 등 부서 공무원들이 1대1로 전담하도록 지정돼 있었다. 일본, 몽골, 필리핀, 독일 등 해외에서 오는 귀빈은 낯선 환경에 대한 편의를 위해 전담 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울산남부지회·울산지부 소속 인사나 오케스트라, 홍보단 소속 내빈까지 공무원들이 1대1로 챙기는 것은 과도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번 의전에 동원된 인력은 대부분 5~7급 공무원으로, 실제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진으로 구성됐다. 특히 남구청 전체 공무원 900여명 가운데 약 300명이 투입되면서 행정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문에는 “우리 구 최대 축제인 만큼 많은 직원을 의전에 참여시킬 수밖에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는 문구와 함께 “임신·출산 예정 등 불가피한 사유로 의전 수행이 어려운 경우 대직자를 지정해 보내달라”는 내용도 담겼다. 사실상 지정된 내빈 의전을 공무원 개인에게 떠넘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앞서 남구청은 지난 6월 수국 축제에서도 동일한 방식의 1대1 의전을 추진했으나 직원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남구청 관계자는 “수국 축제 때도 동원 인원 규모는 지금과 비슷했지만, 첫 시도였던 데다 과도한 방식으로 추진돼 직원 반발이 더 컸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당시 일부 공무원들은 인터넷 게시판에 “시대착오적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남구청은 축제 성공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국내외 귀빈이 다수 참석하는 개막식 특성상 의전 인력이 필요하다”며 “원활한 행사 진행과 방문객 맏이를 위한 조치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무원 사회 일각에서는 불필요한 의전 동원이 청년 공무원들의 이탈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울산지역 한 공무원노조 관계자는 “행사 때마다 대규모 의전 동원이 반복되면 본연의 업무는 뒷전으로 밀리고 직원 피로만 쌓인다”며 “행정 효율성과 시민 중심 행사를 내세운 지방자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도 지자체 축제에서 과도한 의전 동원이 줄지 않는 이유로 “관행적 사고와 행정 편의주의”를 꼽는다. 한 행정학 교수는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에도 ‘내빈 중심 축제’가 이어지고 있다”며 “시민 참여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본래 목적에 맞게 축제를 운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구청은 “직원 참여 없이는 축제 성공이 어렵다”는 입장을 내세우지만, 정작 구청장이 스스로 조직 문화를 혁신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대규모 공무원 동원에 기대는 보여주기식 의전이 계속된다면, 행정 편의주의와 강제 동원 논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강제성 논란이 커지는 만큼 이번 고래축제를 계기로 지방자치단체의 행사 의전 관행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울산=조원일 기자 wc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