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면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들만 나옵니다. 하지만 실제 삶은 고통으로 가득하고, 완벽하지 않죠. 괴수는 ‘완벽하지 않음’의 성자와 같습니다. 그것이 제가 괴수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괴수물의 대가로 불리는 멕시코 출신의 세계적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61) 감독은 19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기자회견장에서 국내외 취재진을 만나 불완전한 존재를 주로 다루는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괴수는 인간의 어두운 면과 비범함의 상징”이라며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연출 데뷔작 ‘크로노스’(1993)와 ‘헬보이’(2004),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2022), 신작 ‘프랑켄슈타인’을 언급하며 “같은 주제를 다른 방식으로 스토리텔링해 왔다. 불완전과 용서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분법적 세상에서 우리는 사실 ‘가운데’에 있으며, 그런 불완전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넷플릭스 영화 ‘프랑켄슈타인’은 메리 셸리의 동명 고전 소설을 원작으로, 천재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오스카 아이작)이 기괴한 연구 끝에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내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베네치아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인 영화는 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돼 국내 관객을 만났다.
델 토로 감독은 “나를 만들어 세상에 내버려뒀다는 점에서 나와 아버지의 관계를 담은 우화로도 느껴졌다. 원작 소설에 나 자신의 전기적인 부분이 녹아들었다”며 “나는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 그런 이해가 깊어질수록 이 영화는 저에게 개인적인 프로젝트가 됐다. 만약 내가 서른에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었다면 예순인 지금과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영화제 참석차 한국에 처음 방문했다는 델 토로 감독은 “한국영화를 너무 사랑하고 한국 감독들과도 친분이 있다. 여러분과 함께하게 돼 기쁘다”며 “부산영화제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제가 아닌가 싶다. 이곳의 아름다움과 영화제 규모, 관객 수준, 월드 시네마에 대한 관객들의 취향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델 토로 감독은 전날 GV 상영 때 극장을 찾은 관객 300여명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 줬다. 그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행복하다. 내가 관객으로서 경험했던 기억들이 선명하게 남아있기에 감독으로서 관객을 만날 때도 충분한 시간을 드리려 한다”며 “날 만나기 위해 그 자리에 온 분들이 그만한 가치를 얻어갈 수 있었으면 한다”고 얘기했다.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도 전했다. 그는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악마를 보았다’(2010) ‘부산행’(2016) 등을 거론하며 “봉준호 감독은 혼돈과 부조리 속에 한국 사회와 문화를 녹인다. 박찬욱 감독은 아름답고 존재론적인 영화들을 만든다. 한국영화엔 다른 나라의 영화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개성이 있다. 한국영화를 볼 때마다 에너지와 힘을 느낀다”고 평했다.
훗날 한국 괴수를 주인공으로 만든 델 토로 감독의 영화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는 부산영화제 측으로부터 선물 받은 ‘한국 괴물 백과’ 서적을 들어 보이며 “아름다운 책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자연에 있는 모든 것으로 괴수를 만든다는 점에서 한국 괴수를 정말 좋아합니다. 언젠가 제가 (한국 괴수물을) 만들게 될지도 모르겠네요(웃음).”
델 토로 감독은 ‘크로노스’로 칸영화제 비평가상을 수상하고 ‘판의 미로’(2006) ‘퍼시픽 림’(2013) ‘크림슨 피크’(2015) 등을 연출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으로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과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 작품상·감독상 등 4관왕을 거머쥐었다. 첫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는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골든글로브 애니메이션상 등을 받았다.
“영화는 내 정체성”이라는 델 토로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건 단순히 작품 목록을 쌓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대기를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영화가 곧 자신의 삶이라는 얘기다. 그는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일을 잘하는 이유는 다른 걸 못 하기 때문이다. 가족으로서도 친구로서도 별로”라며 “인생의 많은 부분을 놓치고 사는 고통이 뒤따를지라도, 영화는 이를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부산=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