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산부인과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불법 낙태 사건의 전모가 법정에서 공개됐다. 임신 말기 산모를 상대로 한 극단적인 방법의 낙태 시술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에서 18일 열린 첫 공판에서 80세 병원장 윤씨와 61세 집도의 심씨는 살인 혐의에 대해 “모든 혐의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두 의료진은 지난해 임신 36주차에 접어든 20대 여성 유튜버를 상대로 제왕절개를 통해 태아를 분만한 뒤, 이를 의도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이들의 범행은 단순한 의료사고가 아닌 치밀하게 계획된 사업이었다. 윤 병원장은 경영난에 시달리던 2022년 8월부터 아예 병원 시설을 불법 낙태 전용으로 개조해 운영했다.
입원실 3개와 수술실 1개를 갖춘 이 ‘전문시설’에는 오직 낙태를 원하는 산모들만 입원했다. 심 집도의는 수술 한 건당 수십만원씩 받으며 시술을 담당했고, 외부 브로커들이 환자를 끌어모으는 역할을 했다.
놀라운 것은 그 규모다. 불과 2년 사이 527명의 산모가 이곳을 찾았고, 윤씨가 챙긴 수익만 14억 6천만원에 달했다. 하루 평균 1명꼴로 불법 시술이 이뤄진 셈이다.
의료진의 은폐 작업도 조직적이었다. 윤 병원장은 해당 유튜버의 의료기록을 ‘출혈과 복통’이 있었던 것처럼 허위 작성해 정상적인 의료행위였던 것처럼 꾸몄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후에는 아예 허위 사산증명서까지 발급하며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 하지만 당사자가 직접 유튜브에 올린 ‘수술 후기’ 영상이 결정적 단서가 되면서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됐다.
흥미롭게도 당사자인 26세 권씨는 의료진과 다른 입장을 보였다. 그는 “낙태를 목적으로 시술을 받은 것은 맞지만 살인에 가담한 적은 없다”며 “태아가 어떤 방식으로 사망했는지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이는 의료진이 산모에게 구체적인 시술 방법을 알리지 않은 채 진행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번 사건은 현행 낙태 관련 법제의 모순을 여실히 드러냈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후 6년째 국회의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약물 낙태 관련 모자보건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임신 10주 내 약물적 임신중절에 대한 안전한 의료환경 제공이 목표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임신 말기 불법 낙태에 대한 법적 공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임신 24주 이후 낙태는 여전히 불법이지만 실질적인 처벌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일부 의료진이 이를 악용해 극단적인 사업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대부분 피고인이 혐의를 인정하고 있어 다음 달 13일 두 번째 재판으로 심리를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생명윤리와 관련 법제도 정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