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정부가 내년 남북협력기금 규모를 다시 1조원대로 늘리는 한편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은 5년 만에 감액 기조로 전환하며 ‘실용 외교’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남북협력기금 집행률은 수년째 한 자릿수에 그쳐 실효성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달린다. 전문가들은 원조정책의 핵심은 예산 규모 증감보다는 운용 방식 개편에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일보가 21일 통일부에서 제출받은 ‘남북협력기금 집행내역’에 따르면 최근 6년간 남북협력기금 집행률은 줄곧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2020년 3.6%, 2021년 2.5%, 2022년 6.1%, 2023년 1.9%, 2024년 3.8%, 올해 8월 기준 2.4%에 그쳤다.
그럼에도 내년 예산은 오히려 늘었다. 윤석열정부 시절 1조원 아래로 떨어졌던 남북협력기금은 3년 만에 다시 1조원대를 회복했다. 올해 본예산 8008억원보다 25.2% 증액된 1조25억원으로 편성됐다. 특히 철도·도로 등 기반시설 구축을 지원하는 ‘경협기반(무상)’ 사업 예산은 1026억원에서 2211억원으로 115.4%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지난 정부에서 급증한 ODA 예산은 감액 기조로 돌아섰다. 2조8093억원에서 2조1852억원으로 약 22% 줄었고,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일시 확대됐던 인도적 지원도 올해 6702억원에서 내년 3255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관련해 유병서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은 “급격히 늘어난 ODA는 집행이 안 됐던 부분을 솎아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원조사업에서도 이재명정부표 ‘실용 외교’가 실현되려면 단순히 예산 규모를 늘리고 줄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이종규 한국개발연구원(KDI) 글로벌·북한경제연구실장은 “남북협력기금은 집행률이 수년째 0%인 사업들도 계속 남겨두고 있다”며 “기금을 실용적으로 활용하려면 기금 내 사업들의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남북협력기금 집행률이 저조한 건 북한의 대남 지원 수령 거부와 남북 교류 단절로 사업 자체가 진행될 수 없어서다. 정부는 기금 증액을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정책적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하지만, 내년 전망도 밝지 않다. 이 실장은 “현재 북한은 한국에 대한 경제적·외교적 수요가 크게 낮아진 상태로, 북·중·러 협력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며 “경색된 남북 관계가 당분간 풀리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내다봤다.
ODA 사업 역시 대대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분투자·보증 등 다양한 금융수단을 활용하고, 이를 전담하는 개발금융기관을 세워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개발금융 체계가 자리를 잡으면 정부 재정 의존도가 높아 ‘눈먼 돈’ 논란이 되풀이되는 현 구조를 바꾸고, 대규모 인프라·기후 프로젝트까지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누리 기자 nur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