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협력기금 다시 1조원대… 북한 외면에 집행률은 ‘한 자릿수’

입력 2025-09-21 05:0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1·12일 국방과학원 장갑방어무기연구소와 전자무기연구소에서 쌍안경으로 핵심기술 개발 사업 현장을 살피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이재명정부가 내년 남북협력기금 규모를 다시 1조원대로 늘리는 한편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은 5년 만에 감액 기조로 전환하며 ‘실용 외교’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남북협력기금 집행률은 수년째 한 자릿수에 그쳐 실효성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달린다. 전문가들은 원조정책의 핵심은 예산 규모 증감보다는 운용 방식 개편에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일보가 21일 통일부에서 제출받은 ‘남북협력기금 집행내역’에 따르면 최근 6년간 남북협력기금 집행률은 줄곧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2020년 3.6%, 2021년 2.5%, 2022년 6.1%, 2023년 1.9%, 2024년 3.8%, 올해 8월 기준 2.4%에 그쳤다.

그럼에도 내년 예산은 오히려 늘었다. 윤석열정부 시절 1조원 아래로 떨어졌던 남북협력기금은 3년 만에 다시 1조원대를 회복했다. 올해 본예산 8008억원보다 25.2% 증액된 1조25억원으로 편성됐다. 특히 철도·도로 등 기반시설 구축을 지원하는 ‘경협기반(무상)’ 사업 예산은 1026억원에서 2211억원으로 115.4%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지난 정부에서 급증한 ODA 예산은 감액 기조로 돌아섰다. 2조8093억원에서 2조1852억원으로 약 22% 줄었고,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일시 확대됐던 인도적 지원도 올해 6702억원에서 내년 3255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관련해 유병서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은 “급격히 늘어난 ODA는 집행이 안 됐던 부분을 솎아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원조사업에서도 이재명정부표 ‘실용 외교’가 실현되려면 단순히 예산 규모를 늘리고 줄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이종규 한국개발연구원(KDI) 글로벌·북한경제연구실장은 “남북협력기금은 집행률이 수년째 0%인 사업들도 계속 남겨두고 있다”며 “기금을 실용적으로 활용하려면 기금 내 사업들의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남북협력기금 집행률이 저조한 건 북한의 대남 지원 수령 거부와 남북 교류 단절로 사업 자체가 진행될 수 없어서다. 정부는 기금 증액을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정책적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하지만, 내년 전망도 밝지 않다. 이 실장은 “현재 북한은 한국에 대한 경제적·외교적 수요가 크게 낮아진 상태로, 북·중·러 협력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며 “경색된 남북 관계가 당분간 풀리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내다봤다.

ODA 사업 역시 대대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분투자·보증 등 다양한 금융수단을 활용하고, 이를 전담하는 개발금융기관을 세워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개발금융 체계가 자리를 잡으면 정부 재정 의존도가 높아 ‘눈먼 돈’ 논란이 되풀이되는 현 구조를 바꾸고, 대규모 인프라·기후 프로젝트까지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누리 기자 nur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