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신학이 복잡하고 불완전하며 비현실적 생각과 시행착오 더미이기 때문에 좋아합니다.”
누군가 던진 ‘신학을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신학자 김진혁(50)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교수가 내놓은 답이다. 튀르키예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의 자전적 에세이 ‘이스탄불’ 속 표현을 재구성한 것이다. 신학을 업(業)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이 질문에 “감히 ‘네’라고 답하긴 힘들지만, 신학엔 기쁨과 슬픔이 뒤엉킨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이 있다”는 이유다.
신간 ‘신학의 슬픔과 기쁨’(복있는사람)은 직업으로서의 신학자와 신학 연구를 하며 느낀 복잡미묘한 감정, 신학적 관점으로 본 사회상을 부드럽지만 예리한 필치로 담아낸 책이다. 설교집도 간증집도 아닌, ‘신학적 산문집’으로 국내선 다소 생경한 분야다. 김 교수를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색다른 시도를 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건강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유머 소재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기독교 역시 자신을 유머 소재로 삼을 수 있다면 성숙함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한국교회 문제로 여러 가지가 거론되나 이를 깊게 들여다보면 특유의 엄숙주의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중년의 제도권 신학자가 이를 덜 심각하게 표현해보면 어떨까 싶어 특별한 시도를 했습니다.”
-신학자의 고뇌가 엿보이는 책입니다.
“신학자로 살다 보면 필연적으로 모종의 우울감을 느낍니다. 먼저 인간으로서 절대자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운명 가운데 공부한다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웃의 삶에 공감하더라도 이들의 삶을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도 있고요.
배우면 배울수록 현실과의 괴리가 크게 느껴지는 학문인 것도 이유입니다. 인류의 모든 분야를 그리스도가 다스린다는 ‘영역주권론’을 논하지만 우리 곁에 얼마나 많은 전쟁과 고통이 있습니까. 신학자라면 결코 무감각하게 떨쳐낼 수 없는 고민거리입니다.”
-신학 공부의 기쁨도 언급했는데요.
“우리네 삶에서 ‘그럼에도’를 가르쳐 주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해결책 없는 질문을 탐구하는 게 무가치해 보일 수 있지만 인간과 하나님에 대한 신앙, 삶의 공허를 설명하는 논리를 제공하는 것도 신학입니다. 현실을 넘어서는 식견을 제공하는 도약 발판의 역할도 합니다.
삶의 비밀을 밝히진 못하더라도 그 자체에 매료되게 하는 신학의 신비한 힘을 발견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밥벌이로서의 신학’도 논합니다.
“인간 본성과 사회 구조상 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행복까지 성취하긴 힘들고, 이는 신학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다루기 조심스러운 부분입니다. 신학 공부는 소명과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밥벌이를 무시하는 소명은 공허하고, 전문성을 배제하는 소명은 기만에 빠집니다.
소명은 도구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소명에 좀 더 유연해진다면 신학교에서 더 많은 걸 배워갈 수 있습니다. 또 밥벌이임을 인정하고 이를 터놓고 말하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금전과 관련한 투명성도 제고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독서법에 관한 구체적 조언도 나옵니다.
“신학이 기본적으로 책이란 매체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만큼, 신학자를 논하며 책을 뺄 순 없습니다. 무엇보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자기의 편견을 깨뜨리고 때론 금기에 도전하며 ‘감히 알려고 하는 마음으로’ 책에 세게 부딪힐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히 성경이나 전공서 외의 인문고전을 읽을 것도 권합니다. 신학은 특히 거시적 시각에서 세상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 가운데 어떻게 활동하는지 파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학생이라면 신학자의 전기를 읽는 걸 추천합니다. 해당 이론이 나온 과정 면면을 살피며 자기식의 신학을 연구하는 내공을 기를 수 있습니다.”
-4년여간 본보에 기고한 칼럼도 실었습니다.
“‘시온의소리’ 칼럼에 강연 원고, 책 출간을 준비하며 새로 쓴 칼럼을 추가했습니다. 2020년부터 작년까지 신학적 관점으로 세상만사를 다뤘는데 다양한 시도를 한 게 기억에 남습니다. 지하철역 돌기둥이나 개의 관점에서 쓴 글도 있으니까요. 정치적 사안이 아니라도 사람의 입장에서 쓰면 선입견이 생길 수 있어 인간이 아닌 화자의 시각을 빌렸습니다.”
-어찌 보면 칼럼니스트에게 비판은 숙명 같습니다.
“그렇기도 하지만 요즘 학자 등 공적 지식인에게 한쪽 편을 요구하는 추세가 점점 거세지는 듯합니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한 대학에서 강연 후 질의응답을 하면서 ‘아까 한 말이지만’을 반복하며 답하는 영상을 봤습니다. 독일 맥락에선 답인 것이 한국에선 아닌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식인에게 입에 떠먹여 줄 정도의 구체성을 띤 답을 요구하는 것이죠.
사회 현상에 대한 단일한 해답은 대중을 한 방향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이는 선동에 취약한 구조를 만들기도 합니다.”
-차기작이 궁금합니다.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AI)이 하는 거짓말을 주제로 신간을 준비 중입니다. 진실을 판별하기 어려워진 시대 속에서 거짓말에 관한 본질적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