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7일(현지시간) 기준 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압박을 받아온 연준이 트럼프 행정부 들어 처음으로 금리를 내렸다. 물가 상승보다 고용 시장의 약화에 대한 우려가 금리 인하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연준은 이날 이틀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뒤 기준 금리를 기존 4.25∼4.50%에서 4.00∼4.25%로 내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한 이후 5번 연속 동결 행진을 이어오다가 9개월 만에 인하한 것이다. 시장의 예측과도 일치했다.
연준은 발표문에서 “최근 지표들은 올해 상반기 경제 활동 성장세가 완화됐음을 시사한다”며 “고용 증가는 둔화했고, 실업률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상승했으며, 다소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연준은 금리 인하 배경과 관련, “위원회는 장기적으로 최대 고용과 2% 수준의 인플레이션 달성을 목표로 한다. 경제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상태”라며 “고용에 대한 하방 위험이 증가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관세 정책에 따른 물가 상승보다 부진한 고용 시장이 더 우려스럽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미국의 최근 3개월간 월평균 고용 증가 폭은 2만9000명으로, 5월 평균 약 13만명에 비해 급격히 둔화됐다.
연준은 이날 발표한 경제전망(SEP)의 금리전망 점도표에서 올해 말 기준금리 예상치 중간값을 3.6%로 제시하며 추가 인하를 시사했다. 지난 6월 발표했던 3.9%에서 낮춘 것으로, 이를 고려하면 연내 0.25%포인씩 두 차례 더 금리 인하가 단행될 전망이다. 올해 FOMC 회의는 다음 달과 12월 두 차례 남았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노동 시장에는 의미 있는 하방 위험이 존재한다”면서도 “하지만 실업률은 4.3%이고, 경제 성장률은 1.5%다. 따라서 나쁜 경제 상황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연준의 금리 인하 결정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해 전날 취임한 스티븐 마이런 신임 연준 이사(국가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 겸임)도 투표권을 행사했다. 그는 트럼프가 주장해온 대로 ‘빅 컷’인 0.50% 포인트 인하에 투표했다. 하지만 나머지 FOMC 위원은 0.25%포인트 인하에 투표했다. 트럼프가 해임을 발표한 리사 쿡 이사도 당분간 이사직을 유지하도록 한 법원 판결에 따라 이번 회의에 참석해 0.25%포인트 인하에 동참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마이런 이사 임명과 쿡 이사 해임 압박 등을 거론하며 “이번 결정은 직접적인 정치적 통제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돼온 중앙은행(연준)에 대한 전례 없는 정치적 압박 속에서 이뤄졌다”고 전했다.
파월 의장은 다만 연준 독립성 우려에 대해 “우리는 독립성 유지를 위해 강력히 헌신하고 있고, 그 외에는 말할 내용이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관세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는 매우 크진 않다”면서도 전체적인 영향을 좀더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