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국립극단이 창단 70년 기념작으로 선보였던 연극 ‘화전가’가 올해 오페라로 재탄생한다. 국립오페라단이 10월 25~2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창작오페라 ‘화전가’를 선보이는 것. 이 작품은 극작가 배삼식, 작곡가 최우정, 안무가 겸 연출가 정영두 등 스타 창작진 3인방의 참여로 공연 전부터 높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화전가’는 한국전쟁을 목전에 둔 1950년 4월 경북 안동을 배경으로 아홉 여인의 이야기를 그렸다. 집안 안주인 김씨의 환갑을 맞아 세 딸과 두 며느리, 고모와 집안일을 봐주는 행랑어멈 모녀 등 아홉 여인은 오랜만에 만나 수다 꽃을 피운다. 김씨는 환갑잔치를 여는 대신 화전놀이를 가자고 제안한다.
이들 여인의 삶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좌우 대립 심화 속에 전쟁으로 치닫던 당시 격동의 역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독립운동을 했던 김씨의 남편은 해방 이후에도 소식이 없고, 아버지를 대신해 감옥에 끌려갔던 큰아들이 죽은 후 작은아들은 좌익으로 몰려 감옥에 갇혀 있다. 또 두 사위 가운데 한 명은 북한으로 넘어갔고, 다른 한 명은 친일파였지만 해방 후 되레 출세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인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준다.
1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열린 ‘화전가’ 제작발표회에서 최상호 국립오페라단 단장은 “국립오페라단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목표는 해외 진출이다. 이제 한국 오페라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점이 찾아온 것 같다”면서 “‘화전가’는 한국의 정서를 충실히 반영하면서도 외국인도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담았다”면서 제작 배경을 밝혔다.
국립오페라단이 이번 작품을 위해 가장 먼저 낙점한 창작진이 배삼식과 최우정이었다. 극작가 배삼식은 철학적 사유, 시적 이미지, 한국적 말맛으로 가득한 대본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음악극에서 그의 장기인 리듬감 있는 문체가 빛을 발한다. 그리고 최우정은 국내 현대음악 작곡가로는 드물게 극음악에 매진하는 작곡가다. 미니멀리즘을 토대로 하되 극에 필요한 다양한 소리의 융합을 꾀한다.
두 사람은 지난 2017년 돈화문국악당에서 음악극 ‘적로’로 처음 협업한 데 이어 2019년 국립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 ‘1945’ 그리고 2022년 아시아문화의전당의 음악극 ‘마디와 매듭’에서도 함께했다. 이 가운데 ‘적로’와 ‘마디와 매듭’을 연출한 인물이 정영두일 정도로 세 예술가는 평소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정영두는 안무가 출신이지만 뮤지컬, 음악극 등에서 연출을 맡는 등 예술적 스펙트럼을 넓혀 왔다. 배삼식이 대본을 쓴 창극 ‘리어’의 연출로 지난해 영국 공연계 최고 권위의 올리비에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화전가’가 오페라 연출 데뷔작인 정영두는 “작가와 작곡가의 의도를 무대에서 잘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내가 안무가 출신이다 보니 움직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페라에서 음악을 표현하기에 자연스러운 움직임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오페라 ‘화전가’는 배삼식의 원작 대본과 마찬가지로 안동 사투리가 가득하다. 다만 선율로는 짧게 끊어지는 안동 사투리를 표현하기 어려운 만큼 아리아는 표준말로 부르되, 대사는 사투리를 쓰도록 했다. 이날 제작발표회에 참석하지 못한 배삼식을 대신해 최우정은 “배 작가의 대본은 기존 오페라처럼 등장인물 사이의 갈등이 외적으로 폭발하는 것과 차이가 크다. 하지만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각각의 등장인물 내면에서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이라야말로 배 작가 대본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오페라 ‘화전가’는 원작 희곡의 줄거리를 대부분 따르지만 달라지는 부분도 있다. 막내딸이 과거를 회상하는 서두가 나오는 한편 화전놀이 가기 전에 끝나는 원작 희곡과 달리 아홉 여인이 실제로 화전놀이를 떠난다. 또한 연극에는 아홉 여인만 나오지만, 오페라에는 이들 외에 합창단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정영두는 “코러스(합창단)는 원작 희곡에서 출연진의 대화 속에 나오는 남편, 아들 등 남성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음악적인 기능을 하는 한편 1950년 당시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대중의 모습을 보여주는 등 다채롭게 활약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오페라에는 메조소프라노 이아경 김선정 임은경, 소프라노 최혜경 오예은 이미영 윤상아 김수정 양제경이 주요 출연진 9명에 캐스팅 됐다. 극의 중심축인 김씨 역의 이아경은 “안동 사투리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도록 출연진 모두 공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