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수어의 매력, 학생들과 나눠요”…농인 교사 허세영의 도전

입력 2025-09-17 12:09 수정 2025-09-17 13:23
허세영 교사가 대구대학교에서 ‘미국 수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구대 제공


청각장애가 있는 현직 특수교육 교사가 대학 강단에서 6년째 미국수어를 가르치고 있어 눈길을 모은다.

주인공은 지난 8월 대구대 일반대학원 박사과정(특수교육학과 언어·청각장애아교육전공)을 졸업해 농인으로서 ‘대구대 1호 박사’가 된 허세영(40) 교사다. 농인이란 청각장애로 인해 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는 새 학기 시작과 함께 특수학교 수업과 대학 강의를 병행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농인이 특수교육 박사가 된 경우는 전국적으로 보더라도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농인으로서 특수교육 교사가 된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박사학위까지 취득하고 대학 강단에까지 서고 있다는 사실은 멈추지 않는 학구열과 교육자로서의 사명을 잘 보여준다.

허 교사는 주중에는 대구시내 한 공립 특수학교에서 17년 차 교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금요일 오후가 되면 연차를 내고 대구대 캠퍼스에 와서 미국 수어에 관심 있는 26명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연차를 개인 휴식이 아닌 또 다른 학생 교육을 위해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2004년 대구대 특수교육과에 입학해 2008년 졸업한 뒤 2009년에 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해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안정적으로 교직에 적응했지만, 스승인 최성규 교수(초등특수교육과 지난 2월 퇴직)의 권유로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됐다.

이후 2010년 대구대 특수교육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해 올해 일반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칠 때까지 꼬박 16년이 걸렸다.

지난 8월 열린 대구대 일반대학원 학위수여식에서 허세영 교사가 박사학위를 수여 받은 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 대구대 제공


그가 미국 수어를 배우게 된 것은 학부 시절 한 농아인협회 지인의 소개로 시직됐다.

미국 갈루뎃 대학교(Gallaudet University)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한 선생님을 만나면서 미국 수어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갈루뎃 대학교는 농인 고등교육을 위한 세계 유일의 종합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수어와 한국 수어의 차이에 대해 허 교사는 “한국 수어는 도상성이 강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미국 수어는 알파벳 지문자를 많이 활용하다 보니 마치 철자를 맞추듯 의미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도상성이란 언어의 형식과 의미 사이에 직접적이고 자연스러운 유사성이 있는 경향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한국 수어로 ‘사랑합니다’를 표현하려면 한 손을 주먹을 쥐고 다른 한손을 손가락을 편 채로 주먹 위에 엎어놓고 돌려주는 동작을 하는 반면, 미국 수어는 ‘I Love You’란 알파벳을 표현하기 위해 주먹을 쥔 상태에서 엄지와 검지 손가락, 새끼 손가락을 펴서 I와 L과 Y를 나타내는 방식이다.

그는 “한국 수어와 많이 달라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미국 수어를 배우면서 언어와 문화가 결합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경험을 했다”며 “이 경험을 학생들과 나누고 싶어 강의실에서 미국 수어의 매력을 전하고 있고 매 순간이 즐겁다”고 말했다.

대구대는 지난 2009년 전국 대학 중 최초로 ‘미국 수어’ 수업을 개설해 최성규 교수가 2019년까지 강의를 맡았다. 이후 제자인 허 교사가 최 교수의 뒤를 이어 2020년부터 겸임교원으로 6년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허 교사는 “처음 수업을 맡았을 때 스승의 강의를 이어받는다는 사실이 큰 부담이자 동시에 영광이었다”며 “일반인들이 외국어를 배우듯 미국 수어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쳐 스승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경산=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