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감각이나 감정, 생각 등을 없애거나 바꾸는 일은 힘들다. 일시적으로는 외면하거나 관심을 돌릴 수 있으나 이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누구나 해보았을 거다. 그래서 힘들게 하는 감각, 감정, 생각을 거리를 두도록 하는 방법을 쓴다. 어떻게 하는 걸까?
여고생 C는 몸에 통증이 너무 심하다. 온몸을 ‘쇳덩이’로 짓누르는 것 같다. 때로는 불로 달구어진 쇳덩이로 누르는 것처럼 화끈거리고 찢어지는 통증으로 바뀌기도 한다. 온갖 검사를 다 해보았으나 이상이 없었다. 섬유근육통이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도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중학교 때 시작된 통증은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심해졌다. 중학교 때 상위권이었던 성적이 고등학교 입학 후 중위권으로 하락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파서 학교를 자주 빠지고 조퇴를 하다 보니 지금은 하위권이다. 2학년 때는 결석이 많아 반에 딱히 친한 친구들도 사귀지 못했다. 학교에 가면 외로움 때문에 더욱 힘들다.
먼저 C가 말한 ‘쇳덩이가 누르는 것 같은’ 말에 주목하여, 쇳덩이가 어떤 모양, 어떤 색깔인지 누르는 느낌이 어떻게 변하는지, 어디가 가장 아픈지 물어본다. ‘무겁고 검푸른 갑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아요. 거의 항상 어깨나 등을 짓누르지만 때로는 갑옷이 조여지면서 옴을 죄는 것 같고 어떤 때는 불에 달구어진 것처럼 화끈거리고, 따가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거의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아요. 물론 움직일 수는 있지만 정말 아파요. 그냥 포기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치료자 : 그렇다면 그 통증을 느끼는 건 누구죠? C인가요? 갑옷인가요?
C : 저죠.
치료자 : 그럼 통증이 어디서 느껴지는지, 언제 심해지는지, 누르는 느낌인지, 화끈거리는 느낌인지를 관찰하는 건 누구죠?
C : 그것도 당연히 저죠.
치료자 : 통증이 어디에서 가장 심한가요? 갑옷으로 인한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곳도 있나요?
C : 어깨와 목이 가장 심해요.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곳은 없어요. (그래도 잘 관찰해보라고 하니) 음……. 그래도 발가락에는 느껴지지 않는 거 같아요.
치료자 : 그렇다면 그걸 관찰하고 판단하는 건 누구죠?
C : 저예요.
이처럼 통증을 구체적인 ‘사물’로 치환하여, 관찰하는 주체(나)와 대상(통증)을 구분하면서 거리감을 만들어 통증과 ‘나’를 동일시하는 것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런 후에.
치료자 : 만약 나를 짓누르고 아프게 하는 갑옷이 사라진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C : 당연히 고등학생이니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입시를 준비하겠죠. 그리고 친구들도 사귀고 쉬는 시간에는 같이 수다도 떨고 하겠죠. 주말에는 친구들과 코인 노래방 가서 노래도 하고, 영화도 보러 가고, 엄마도 도와드리고, 가족들과 여행도 가고요.
치료자 : C에게는 장래의 성장, 친구들, 가족이 중요하군요. 그렇다면 짓누르는 느낌과 통증이 무겁고 고통스럽지만, 갑옷을 입은 채로 원하는 삶을 위해 한 발자국이라도 걸어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느낌을 다시 또 느껴 보는 건 어떨까? 우리는 때로 머리보다는 발에 의지해야 할 때가 있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