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 찾은 日청년들 “온몸이 떨렸다”

입력 2025-09-16 17:19
일본그리스도개혁파교회 청년들이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음성 가이드를 듣고 있다. 일본그리스도개혁파교회 제공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 마키노 유우지(26)씨가 대못 상자 앞에 멈춰선 뒤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학교에선 이런 거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불과 100년전 인권이 이렇게까지 짓밟혔구나.’ 대못 상자는 못을 박아둔 상자 안에 사람을 넣고 바깥에서 발로 상자를 흔드는 일제 강점기 고문 도구다.

마키노씨는 서대문형무소에서 받은 충격을 전하며 “참혹한 역사 현장에 서 있다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떨렸다”고 회상했다. 그는 “공교육 과정에선 일본이 조선을 강압적으로 지배한 서사를 구체적으로 배우지 못했다”며 “연도별 사건 정도만 짧게 공부했다”고 전했다.

일본그리스도개혁파교회 청년들이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일본그리스도개혁파교회 제공

하타나카 마나(19)양은 같은 날 소녀상 옆에 앉아 손을 맞잡았던 경험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다녀온 하타나카양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성 착취 사례를 보고 들었다”며 “전쟁은 전쟁뿐만 아니라 온갖 폭력을 동반한다는 걸 알게 됐다. 평화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마키노씨와 하타나카양은 일본그리스도개혁파교회(RCJ) ‘한국평화스터디투어’로 지난 12일 한국을 찾은 기독 청년들이다. 스터디투어 참가자는 두 사람을 포함해 총 7명이다. 한국평화스터디투어 일정과 취지를 간추린 기획안이 있었는데, 문서 한쪽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평화와 화해를 경험하기’ ‘같은 세대의 신앙인으로 국적과 문화를 넘어 한국 청년들과 서로 교제하고 격려하기.’ 일본 기독 청년들은 닷새간 서대문형무소를 비롯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등 서울 곳곳의 역사 현장을 찾았고, 직전 주일인 14일엔 서울 서현교회(이상화 목사) 청년들과 만났다. 16일엔 일본으로 귀국했다.

일본그리스도개혁파교회 청년들이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서현교회 앞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일본그리스도개혁파교회 제공

일본그리스도개혁파교회의 한국평화스터디투어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다. 이번 여정에서 일본 청년들을 인솔한 이재영 선교사는 “일본 역사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이 일제의 잘못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이 있었다”며 “교단 내 다음세대에게라도 살아있고 반응하는 신앙을 전수하기 위해 한국평화스터디투어가 기획됐다”고 설명했다. 일본그리스도개혁파교회는 일제에 협력했던 일본 교계의 죄를 회개하며 1946년 세워진 교단이다.

이 선교사는 “이번 투어는 일본인으로서 미안한 마음과 부끄러움을 한 번 느껴보라는 시간이 아니다”라며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기대지 않고,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같은 잘못을 범할 수 있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게 이번 역사 탐방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청년들은 앞으로 한국과 더 많은 교류를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내년에 목사 고시를 앞둔 마키노씨는 “한국의 역사 현장에서 받은 충격을 잊지 않겠다”며 “기독교인으로서 평화의 다리 놓는 일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일본그리스도개혁파교회 청년들이 16일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서 가이드에게 한국 기독교 선교 역사를 듣고 있다. 일본그리스도개혁파교회 제공

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