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 작가’ 김선, 균열 속에 담은 치유의 미학

입력 2025-09-16 10:37 수정 2025-09-16 10:56
김선 작가가 전시장에서 달항아리 작품 앞에 서 있다. 그는 전통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작업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김선 작가 본인 제공

‘달항아리 작가’ 김선의 예술 여정은 어린 시절 즐겨 그리던 그림에서 시작됐다. 그는 “그림은 제게 놀이이자 삶 그 자체였고, 화가 말고는 다른 길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회상한다. 화가로 향하는 길은 너무도 자연스러웠고, 붓을 잡는 순간의 행복과 열정은 늘 충만했다.

하지만 40대에 접어들며 위기가 찾아왔다. “내 것”이 없다는 회의감이 몰려왔고, 방향을 잃은 채 수많은 실험을 반복했다. 붓조차 잡기 어려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작업 과정에서 우연히 생겨난 균열(빙열)을 달항아리에 접목하면서 새로운 길이 열렸다. 그는 “그 순간 달항아리가 제 작업의 길이라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달항아리,마음새-몸새-이음새 86.0.0×75.0cm Mixed media 2025. /사진=김선 작가 본인 제공

김 작가가 달항아리를 작업의 중심에 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조선백자의 정수로 꼽히는 달항아리는 완벽하지 않은 둥근 형태, 담백한 색감, 자연스러운 비대칭이 특징이다. 그는 이를 겸손과 절제, 여백의 미로 해석하며 “나의 미학적·철학적 지향점과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달항아리는 단순한 백자가 아니다. 혼합재료를 활용해 질감과 입체감을 극대화하고, 표면에 드러나는 균열은 인간의 상처와 기억을 은유한다. 김 작가는 “균열을 화면에 옮기는 과정이 곧 카타르시스”라며 “마치 일기를 쓰듯 아픔을 기록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고 했다.

김선 작가가 작업실에서 달항아리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혼합재료와 빙열 표현으로 삶의 균열과 치유의 의미를 담아낸다. /사진=김선 작가 본인 제공

김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따뜻하다. 둥글고 비움이 있는 달항아리를, 세상을 품는 그릇으로 해석하며 “달항아리를 통해 세상과 사람을 품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강조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관람객들이 작품 앞에서 분주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고요한 울림과 위로”를 느끼길 바란다.

‘달항아리 작가’라는 별칭에 대해 김 작가는 긍정적이다. 그는 “달항아리는 제 작업의 중심 소재이자 상징적 언어이며, 전통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독창적 시도로서 제 정체성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향후 작업 방향에 대해 그는 “혼합재료와 빙열 표현을 더 발전시켜 회화와 조형의 경계를 탐구할 것”이라며 “달항아리라는 전통적 소재를 새로운 조형 언어로 확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대중들에게 “전통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작가, 달항아리를 통해 한국적 미학과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는 인물”로 기억되길 바란다. “‘치유하는 예술’을 목표로, 작품이 자신에게는 위로가 되고 관람객에게는 삶을 보듬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는 그의 바람처럼, 김 작가는 오늘도 달항아리의 균열 속에 삶과 치유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한편, 김선 작가는 오랜 시간 공들여 온 ‘달항아리’ 연작을 다음 달 3일부터 25일까지 갤러리 나우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