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핵보유국 인정하라”… 더 강력해진 북한의 ‘대화 조건’

입력 2025-09-15 16:36
오스트리아 빈 주재 북한대표부는 15일 공보문으로 “책임적인 핵보유국으로서 국제사회 앞에 지닌 자기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해 나갈 것”이라며 핵보유국 지위를 강조했다. 국민일보DB

북한이 국제사회를 향해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재차 요구했다. 2017년 국제무대에 등장하기 전 핵 무력 완성을 강조했던 모습과 유사하다는 평가다. 북한은 9차 당대회가 열리는 내년까지 주요 대화 상대인 미국을 겨냥해 ‘판 깔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오스트리아 빈 주재 북한대표부는 15일 공보문으로 “책임적인 핵보유국으로서 국제사회 앞에 지닌 자기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해 나갈 것”이라며 “현 지위를 변경시키는 임의의 시도도 철저히 반대 배격할 것”이라고 밝혔다. 빈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있는 곳이다. 최근 개최한 IAEA 이사회에서 미국 대표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계속 전념하고 있다”는 의견을 밝히자 이에 반발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본인들의 핵 보유 배경에 관해 “힘의 균형을 보장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또 “국제적인 핵 전파 방지 제도의 근간을 허물고 있는 미국의 패권 행위야말로 국제사회가 직면한 최중대 위협”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북한은 최근 며칠 사이에 연달아 국제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내고 있다. 전날에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박정천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메시지로 한·미·일 연합연습을 맹비난한 데 이어 핵보유국 지위를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의 행보를 보면 2017년 위협 수위를 끌어 올리며 2018년 돌연 대화 국면으로 들어선 모습과 상당 부분 닮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은 2017년에도 공격적인 메시지와 무력 공세를 펼쳤으며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후 이듬해 남한, 미국과 대화에 나섰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2017년에도 공세를 펼치다 갑자기 대화로 전환했다”며 “본인들의 전략을 관철하기 위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핵보유국 지위 인정은 기존보다 강력해진 메시지로 평가된다. 특히 미국과의 협상에서 비핵화가 아니라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내걸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의도도 읽힌다. 임을출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과거 북한은 비핵화 협상에 모호한 여지를 남겼지만 이제는 비핵화를 완전히 배제하고 핵 보유를 영구적으로 선언해 협상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라며 “미국과의 비핵화 논의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강한 메시지로 과거보다 훨씬 더 단호하다”고 우려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외교부는 “핵확산금지조약(NPT) 규정에 따라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일치된 입장”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내년 초로 예정된 9차 당대회 이전까지 본인들에게 유리한 구도를 만드는 일에 집중할 전망이다. 당대회는 북한 노동당의 최고 권력기관으로 정책의 주요 방향을 결정하고 계획을 발표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2일 국방과학원 전자무기연구소를 방문해 “당 제9차 대회에는 국방건설 분야에서 핵 무력과 상용무력 병진 정책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며 주요 정책을 예고했다. 핵 무력을 개발해 미국과의 협상에서도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9차 당대회까지 쉽게 (대화를 위해) 움직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남북관계 개선, 북·미 대화를 위한 방안을 최대한 찾아볼 것”이라고 밝혔다.

박준상 기자 junwi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