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북부 유목생활과 전통을 이어온 렌딜레 부족이 모여사는 케냐 마르사빗주 코어 지역.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광야에서 아이들은 한때 학교보다 가축을 돌보는 일이 먼저였다. 배움은 사치였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일은 집안의 일꾼을 잃는 선택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부모들은 “교육은 가문의 자랑이자 미래를 여는 길”이라고 말한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이 운영하는 아동결연개발사업(CDP)과 현지에서 묵묵히 복음을 전해온 선교사들이 있다. 아이들은 교복과 학용품을 지원받으며 학교에 다녔고 말씀을 배우며 신앙을 얻었다. 그들이 이제는 변호사·목회자·교사를 준비하는 대학생이 되어 공동체의 리더로 세워지고 있다. 국민일보는 최근 이 ‘다음세대 리더’로 성장한 청년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신앙 여정과 마을에 일으키는 변화를 들어봤다.
“우리 공동체 지킬 첫 변호사가 되고 싶어요”
로아 갈보란(24)은 내년 1년 과정의 케냐 로스쿨에 입학한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CDP의 지원을 받으며 학업을 이어갔다.
그는 2019년 현지교회에서 열린 유스캠프에서 “자유의지로 세상과 주님 중 누구를 따를 것인지 선택하라”는 메시지를 듣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해서 방학 때면 틈틈히 선교사 사역을 돕고 있다.
로아는 “아직 렌딜레 출신 변호사들이 없는데 우리 공동체를 보호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며 “내가 가진 법적 지식으로 우리 마을 사람들을 돕는 그 날을 꿈꾼다”고 말했다.
그는 동시에 후배 세대를 걱정했다. “저처럼 후원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렌딜레 아이들이 복음을 만나고 교육의 기회를 얻도록 기도해주세요.”
“사역을 돕는 청년으로”
나자로 메르키찬(22)은 과부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2살 때 CDP에 등록해 선교사와 연결되면서 삶이 달라졌다. 그는 “예전엔 엄마 심부름도 잘 하지 않았는데 선교사가 말씀을 전해주는 토요프로그램에서 십계명을 배우며 부모를 공경하는 법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나자로는 새벽 5시 기도 모임에 빠지지 않았고, 청소년기엔 친구들과 ‘워리어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모임을 만들어 마을 전도에 나섰다. 현재는 케냐 메루 과학기술대학교에서 지역개발을 전공하며 방학마다 사역을 돕는다. “제 마을 공동체를 위해 전공을 살려 일하고 싶습니다. 산상수훈 말씀처럼 복음에 순종한 삶을 살며 지역을 섬기길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제목은 분명하다. “렌딜레에는 아직도 예수님을 모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학업을 잘 마치고 직장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현지 선교사의 든든한 동역자가 된 이들
후세인 갈보란(45)은 코어의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2009년 기아대책과 연결됐다. 처음엔 외국인 선교사가 외로워한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선교사 가정을 위한 샤워용 물을 옮기며 동역을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슬림이었던 그는 선교 사역에 동역하는 시간이 늘어나며 이듬해 예수님을 영접했다. 후세인은 “무슬림은 예수를 단순한 사람이라 하지만 나는 그분이 내 죄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이스트아프리칸 바이블컬리지 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목사가 되어 지역 아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후세인은 “아직 여기 문화나 문명에 뒤쳐져있는 렌딜레 공동체에 기독교 정신을 심고, 이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밝혔다.
그랜트 하루구라(40) 역시 현지 선교사의 든든한 동역자다. 설교 통역, 제자훈련, 교회·학교 연합사역을 돕는 그는 “마을 아이들이 말씀을 배우고 자라서 다시 교회와 학교로 돌아와 섬기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사역자로 살아가며 느낀 감사한 부분을 나눴다.
“첫째는 예수님을 깊게 만난 것, 둘째는 안정된 일자리로 가족을 부양할 소망을 얻은 것, 셋째는 공동체가 복음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 삶을 통해 이런 일을 이루시는 게 너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목회자를 꿈꾸며 교회를 지킨다.
소라 아미요(26)는 말리왁 교회를 섬기며 신학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목회를 꿈꿔온 그는 방학마다 유스캠프에서 청소년들을 인도한다. “말씀을 전할 때 아이들 눈빛이 반짝이는 걸 보면 가장 행복합니다. 저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제 입술을 통해 누군가의 인생에 빛을 비추신다는 사실이 너무 벅찹니다. 제 삶 전체를 복음 전하는 일에 드리고 싶습니다.”
쿠레와 심데니와(23)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교회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설교를 받아적던 소년이었다. 2010년 CDP 후원을 시작했고 2011년 예수님을 영접했다. 현재 우캄바 성경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그는 목회자의 길을 준비하고 있다.
“많은 친구들이 도시 목회를 꿈꾸지만 제 마음은 여전히 코어 마을에 있습니다. 어둠 속에 살아가는 우리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이 마을에 온전히 복음만이 전해지고, 아이들이 우상을 버리고 주님만 따르는 날이 오길 기도합니다.”
학교에서 봉사하는 미래의 교사들
말말로 차우레(19)는 2015년 CDP에 등록해 2017년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는 현재 현지 아이들이 다니는 믿음초등학교에서 자원봉사 교사로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며 사범대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말말로는 “과거엔 도움을 받던 아이였지만 받은 사랑을 다시 흘려보내는 꿈을 이루고 싶다”며 “가르치는 아이들이 ‘나도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고 말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나씨보 미르기찬(24) 역시 CDP 출신으로 케냐에서 명문인 나이로비 사범대학교에 합격했다. 올해 가을학기를 준비하고 있는 그는 “CDP가 아니었다면 학업을 마치지 못했을 것”이라며 “교복과 등록금, 심지어 후원자가 보내준 작은 선물 하나까지도 내겐 큰 힘이 됐다”고 고백했다.
현재 믿음초등학교에서 봉사하는 그는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늘 ‘너희도 꿈을 이룰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말한다”며 “저를 통해 그 아이들이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품는다면 그것이 가장 큰 감사 제목“이라고 전했다.
“다음세대에 복음이 뿌리내리길”
이들의 공통된 기도는 자신과 같은 다음세대가 세워지는 것이다. 후세인은 “여전히 전통 제사가 일상처럼 남아 있어 아이들이 복음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며 “새로운 세대에는 장벽이 무너지고 예수님만 따르는 순수한 신앙이 세워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우유를 붓는 전통 제사와 같은 토속신앙이 버무러진 관습이 교회 안에도 남아 있다”며 “이런 거짓 전통이 무너지고 아이들이 혼합신앙에서 벗어나 참된 크리스천으로 서기를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코어(케냐)=글·사진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