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북한을 떠나 중국으로 향했던 20대 김모씨는 5년간 인신매매의 덫에 걸려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말 한국 땅을 밟은 그는 “사람에게는 늘 상처만 받았기에 누구도 믿지 않고 혼자 사는 법만 생각했다”며 “그런 제가 반석학교에 와서 ‘노력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처음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사람들을 돕는 경찰이 되겠다는, 북에선 꿀 수 없던 꿈도 생겼다.
반석학교(이사장 오정현 목사)가 15일 서울 동작구 한 건물에 더 넓은 새 터전을 마련하고 이전 개소식을 열었다. 2006년 설립된 반석학교는 국내 탈북민 대안학교 중 북한 출생 학생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지난 19년간 152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탈북 청소년들의 ‘친정집’ 역할을 해왔다. 이날 개소식에는 지성호 함경북도지사, 김정각 한국증권금융꿈나눔재단 이사장, 강종석 통일부 인권인도실장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해 새 출발을 축하했다.
반석학교는 2006년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에 의해 설립됐다. ‘한 사람을 위한 모든 사랑’이라는 교육 철학을 실천해왔다. 학생회장 엄소영(18)양은 “이전 학교는 공간이 좁아 다 함께 밥을 먹지 못했는데, 이제는 모두가 얼굴을 마주 보고 식사하며 공동체를 느낄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다만 학생들은 변치 않는 교사들의 헌신적인 사랑이 학교의 가장 큰 힘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씨는 “이해할 때까지 밤늦게 남아서 가르쳐주시는 선생님들 덕분에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전했다. 운영 재원은 설립 주체인 사랑의교회와 남북하나재단(통일부), 서울시교육청이 3분의 1씩 분담하고 있다.
먼저 반석학교를 거쳐간 탈북민 졸업생들에게 학교는 제2의 고향집이다. 10년 전, 27세의 나이로 반석학교에 처음 왔던 이강(37)씨는 “선생님이 내주신 입시 문제를 거의 풀지 못하고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날 처음으로 ‘겸손’을 배웠다”고 회상했다. 그는 “스무 해 넘게 받지 못했던 사랑을 이곳에서 받으며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며 “친정집 새 이사에 집들이를 하기 위해 올해 마지막 남은 반차를 쓰고 이곳에 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현재 KB국민은행의 평범한 회사원이자 한 가정 가장으로 살아가고 있다.
학교에서 받은 사랑은 다른 이를 돕는 마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씨가 사람들을 지키는 경찰을 꿈꾸듯, 학생회장 엄소영(18)양 역시 미국 대학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엄양은 한국에서 나고 자라 반석학교에 온 뒤에야 어머니가 탈북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이곳 선생님과 친구들은 어떤 일이든 저를 믿고 응원해주었다”라며 “그 덕에 자신감을 얻어 학생회장은 물론 학교 홍보영상과 연극 무대에서도 설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기원 교장은 “새로운 보금자리는 지난 19년의 성과를 넘어 새로운 도약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성경적 가치관 위에서 상처 입은 아이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보듬고, 통일 시대를 이끌어갈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로 성장하겠다”고 다짐했다.
글·사진=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