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쉬는 날이다. 24시간 맞교대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그는 오늘 오랜만에 어느 사립학교 쪽으로 향했다. 지난 5년 동안은 눈길도 주지 않았던 곳이다. 만감이 교차한 표정으로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학생들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는 30년 동안 이 사립학교의 선생님이었다. 학생들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고 스스럼없이 대해서 학생들이 다정한 삼촌쯤으로 여길 정도였다. 그는 선생이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승진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정도의 연차면 벌써 교감 정도는 되어야 했지만,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좋았고 그 자체에 만족했다. 특히, 승진하기 위해서는 학교 설립자이자 이사장에게 정해진 돈을 줘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아서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어느 날, 설립자의 수족 노릇을 하던 학교재단 사무국장이 한번 보자고 연락이 왔다. 사무국장을 볼 일이 좀처럼 없어서 그는 무슨 일인지 의아해하면서 재단 사무실에 들렀다. 사무국장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제 교감 승진 해야 되지 않냐고. 그보다 연차가 적은 다른 선생님도 벌써 교감이 되고 교장이 되었는데, 뭐하고 있냐고.
사실 그보다 연차가 훨씬 적은 선생님이 당시 교감이었고, 교장도 그보다 연차가 적었다. 그래서 남의 눈도 있고 하니 교감이라도 어떻게 해 봐야 되지 않을까라고 고민하기도 했었다. 순간 마음이 흔들린 그가 사무국장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사무국장은 자신의 은행 계좌번호를 알려주면서 말했다. ‘금액은 아시죠?’라고.
이후, 그는 돈을 입금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교감직을 돈을 주고 산다는 게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돈을 입금하고 말았다. 돈을 입금한 후에도 그의 고민은 거듭되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부끄럽기도 했다. 며칠 후 양심의 가책을 느낀 그는 설립자를 찾아가서 승진을 포기할 테니 돈을 돌려달라고 말했다. 이런 말을 하게 되면 교직을 계속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설립자는 이 학교재단에서 절대자이자 왕이었기 때문이다.
한참 후, 설립자가 그를 재단 사무실로 불렀다. 그 자리에는 사무국장도 함께 있었다. 사무국장이 현금으로 그에게 돈을 돌려주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라고 한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 후에 학교재단의 고름이 터졌다. 누군가 이 학교법인이 각종 회계비리를 저질렀다는 내용으로 검찰에 고발한 것이다.
검찰 수사 결과, 이 학교법인은 그야말로 비리와 매관매직의 온상이었다. 설립자는 아들에게는 이사장, 부인에게는 이사, 딸에게는 행정실장을 맡기고, 사무국장 수족처럼 부리면서 온갖 비리를 저질렀다. 설립자와 사무국장은 이 일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이 불똥은 그에게도 튀었다. 그도 파면 징계를 받은 16명의 교사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파면된 교사들은 파면 취소 소송에 나섰고, 법원은 금품을 건넨 교사들의 행위가 적극적 가담이 아닌 비자발적·강제적 부역자라고 판단하고 파면을 취소했다. 이에 학교재단의 임시이사회는 교사들의 복직을 허용하고 다시 징계위원회를 열어서 경징계하겠다고 밝혔다. 복직을 앞둔 그가 오늘 학교 운동장을 찾아 뜨거운 눈물을 흘린 것이다. 다시는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생님이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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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