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65) SK그룹 회장과 노소영(64)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세기의 이혼’ 소송이 조만간 결론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조4000억원의 재산 분할이 달려있는 이 소송은 현재 1년 2개월째 심리가 이어지고 있다.
14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오는 18일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 심리를 진행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대법원이 공개한 심리 대상에는 최 회장과 노 관장 사이 이혼 소송은 정식으로 포함되지 않았다. 현재 해당 소송은 대법원 1부(대법관 서경환)에 배당돼 있는데, ‘보고 사건’으로 지정해 대법관들이 주요 쟁점을 함께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오는 18일 전원합의체 심리를 위해 모인 대법관들이 해당 이혼 소송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대법관들이 일정 수준 이상 검토를 진행했다는 말까지 흘러나와 조만간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까지 들린다.
특히 전합이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어떤 경우든 2심 결론이 바뀔 가능성이 높은 것 아니냐는 예상도 나온다.
서울고법은 지난해 5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 회장이 보유한 주식회사 SK 지분은 분할 대상이 아니라는 1심 판단을 뒤집어 분할액이 20배(665억원→1조3000억원)가 됐다.
천문학적 재산분할 배경에는 지금의 SK그룹이 있기까지 노태우 전 대통령과 노 관장의 기여가 있었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특히 쟁점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SK 측에 유입됐는지였다. 2심에서 등장한 증거로, 노 관장 측에 유리한 결정적 증거다.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300억원이 최종현 선대회장 쪽으로 흘러 들어갔으며 선대회장의 기존 자산과 함께 당시 선경(SK)그룹 종잣돈이 됐다고 봤다.
근거는 노 관장이 법원에 제출한 모친 김옥숙 여사의 메모와 어음 봉투다. 겉면에 ‘선경’이라고 적힌 봉투에는 50억원짜리 약속어음 4장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당초 6장이었으나 2장은 2012년경 SK그룹에 줬다는 게 노 관장 주장이다.
300억 은닉 비자금과 관련해선 현재 서울중앙지검에서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기도 하다.
최 회장은 상고하면서 적극 반박했다. 약속어음은 차용증과 달라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될 수 없고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퇴임 후 생활자금을 약속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정작 300억원의 전달 시기나 방식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최 회장 측은 상고심에 최종현 선대회장의 육성 파일도 증거로 제출했다. 파일에는 최 전 회장이 내부 임원회의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건 국민한테 오해받는 거다. 사돈한테 특혜받는 건 일절 피했다”는 취지로 발언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서 “쭉 조사 다 했는데 그렇게 보니까 증권(태평양증권 인수)도 깨끗하고 이동통신도 깨끗하다”고 말한 내용도 있다고 한다.
아울러 설령 비자금 유입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노 전 대통령이 뇌물을 받아 불법 조성한 자금을 분할 대상으로 삼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정경유착 정당화로, 법감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SK 기업 성장이 경제위기와 신기술 파고를 헤쳐온 임직원 노력이 아닌 정경유착 산물이냐는 지적도 있다.
항소심은 노 전 대통령의 ‘뒷배’가 그룹 성장에 무형적 기여를 했다고 봤다. 선대회장이 대통령 사돈 관계를 경영의 보호막 내지 방패막이로 인식해 성공적인 경영활동과 성과를 이뤘다는 판단이다.
최 회장은 SK 주식을 1994년 부친에게서 증여받은 2억8000만원으로 취득해 부부 공동재산이 특유재산이라고 주장했으나, 이는 돈을 증여받은 시점(5월)과 주식을 매입한 시점(11월)이 다르다는 이유 등으로 배척됐다.
최 회장은 또 ‘자수성가형’ 사업가가 아니라 선대회장 경영권을 승계받은 ‘승계상속형’ 사업가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주식가치 상승에 기여한 부분이 없다는 취지로도 주장했으나 2심은 임의적 구분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 회장 부자의 기여분 계산에 범한 오류도 심리 대상이다. '판결문 경정' 사태다. 판결문 경정은 판결의 실질적 내용이나 결론을 변경하지 않고 판결문에 기재된 잘못된 부분만을 수정하는 절차다.
재판부는 선대회장 사망 무렵인 1998년 SK 주식 주당 가치를 100원으로 판결문에 썼다가, 최 회장의 기자회견 지적에 따라 1000원으로 고쳤다. 이에 따라 당초 12.5배로 계산한 선대회장 기여(1994~1998년)분은 125배로 10배 늘고, 최 회장 기여(1998~2009년)분은 355배에서 35.5배로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최 회장 측은 ‘치명적 오류’라고 지적했으나 재판부는 설명자료를 통해 “중간단계 사실관계의 계산오류를 수정한 것으로 재산분할 비율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노 관장 측은 그룹 성장에 기여했다는 증거로 상고심에 2003년 SK 분식회계 사건으로 구속된 최 회장이 자신에게 보낸 ‘옥중서신’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편지에는 SK그룹 운영과 관련된 내용이 담겼는데, 노 관장은 이것이 자신이 경영적 조언을 했음을 입증한다고 주장한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