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도시는 저마다의 서사를 품고 자란다. 광주는 천년의 시간을 견디며 왕실 도자기와 남한산성의 정신을 간직해온 유서 깊은 도시다. 하남은 미사강변도시, 감일·위례신도시 개발과 함께 불과 10년 만에 인구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역동하는 도시다.
한쪽은 깊이를 더하고, 다른 한쪽은 속도를 더하며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이제 두 도시는 각자의 서사를 향해 나아가는 두 개의 선명한 세계가 됐다. 그러나 ‘광주하남교육지원청’이라는 하나의 틀은 이 상이한 성장의 흐름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변화의 파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통합 체제는 이미 분명한 한계에 닿아 있다.
그 한계는 숫자와 현실 속에서 더욱 분명하게 확인된다. 지난 10년간 하남 인구는 신도시 개발로 2015년 16만7000여명에서 2025년 32만8000여명으로 두 배 가까이 폭증했고, 광주시 역시 39만7000여명으로 꾸준히 성장하며 교육 환경은 격변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광주시에 자리한 하나의 교육지원청이 두 도시를 동시에 책임지는 구조는 갈수록 버거워지고 있다. 도시 규모와 교육 수요가 달라지면서, 더 이상 현장의 변화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물리적 거리에서 비롯되는 행정 비효율은 하남 현안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을 어렵게 만들고, 임시방편으로 운영되는 하남교육지원센터의 소규모 인력만으로는 두 도시의 이질적인 교육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기 어렵다. 무엇보다 하남 학부모들이 느끼는 심리적 소외감과 실질적인 불편함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넘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두 도시가 품은 고유한 서사의 차이다. 지난 1년 6개월여 동안 교육장으로서 두 지역의 특성을 분석한 결과, 광주와 하남은 각자의 역사와 미래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교육 발전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광주는 천년의 역사와 장인의 혼이 살아 숨 쉬는, 깊이의 서사를 지닌 도시다. 수려한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도농복합도시로서, ‘전통예술·생태교육 도시’라는 비전 아래 역사의 메아리를 내일의 영감으로 길어 올려야 한다.
최근 전 세계를 휩쓴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신드롬이 그 가능성을 증명한다. K팝이라는 현대적 코드에 한국 고유의 설화를 녹여내 가장 세계적인 콘텐츠를 탄생시킨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광주가 품은 남한산성의 역사와 왕실 도자기, 국악 등 유구한 전통예술은 제2의 ‘케데헌’을 탄생시킬 무한한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초·중·고를 잇는 유기적 교육으로 학생들이 이 위대한 유산을 현대의 언어로 재해석하는 ‘문화 해석자’로 성장하고, 나아가 관련 대학 및 산업과 연계해 미래를 개척할 때, 광주는 ‘전통문화예술 교육의 허브’로서 그 서사를 완성할 것이다.
하남은 체계적인 개발로 잘 갖춰진 도시 인프라 위에서 새로운 시대의 맥박이 가장 선명하게 고동치는, 속도의 서사를 지닌 도시다. 향후 교산 신도시의 역동적인 미래가 펼쳐질 이곳은 그 자체가 혁신을 위한 거대한 캔버스다.
하남의 교육은 ‘미래 교육 신도시’라는 청사진 아래, 도시 전체의 자원을 연결해 학생들이 경계 없이 배우는 터전을 만들어야 한다. 이미 자율형 공립고, 과학중점학교, 협약형 특성화고, 외국어 중점학교, 한국애니메이션고 등 다채로운 고등학교가 자리 잡았으며, 이 학교들이 담장을 넘어 ‘공동교육과정’과 ‘공유학교 플랫폼’을 통해 첨단 기업 및 연구소와 ‘지식의 군도’(群島)를 형성해야 한다.
디지털 AI, 창의 융합, 레포츠, IB 교육, 언론 미디어, 메디컬 등 다양한 분야를 공유학교 플랫폼을 통해 확장해 나갈 때, 도시 인프라 자체가 살아있는 교과서가 된다. 그 속에서 학생들은 미래 산업의 설계자이자 능동적인 개척자로서 자신들의 서사를 써 내려갈 것이다.
이렇듯 광주의 깊이와 하남의 속도는 각자의 서사 위에서 존중받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따라서 광주하남교육지원청의 분리는 단순한 행정 효율성 차원을 넘어, 두 도시의 고유성을 지키고 교육적 성숙을 돕기 위한 시대적 통찰이자 철학적 결단이다.
현재 국회에서 심의 중인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개정은 그 결단을 향한 첫걸음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광주는 깊이를 품은 전통문화예술 교육의 중심지로, 하남은 속도를 품은 미래 교육 신도시로 도약할 것이다. 이는 통합교육지원청 분리라는 결단을 넘어, 대한민국 교육의 다양성과 경쟁력을 세계에 증명하는 거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하남=박재구 기자 park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