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예수라면 따를 만하지”…당신이 본 예수는

입력 2025-09-12 00:02 수정 2025-09-12 00:02
‘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의 저자인 미국인 선교사 스탠리 존스는 선교지로 찾은 인도에서 “말이 아닌 삶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기독교인을 보고 싶다”란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사진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대화를 건 여성을 바라보는 한 남성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혹시 주변에서 이런 말 들어봤습니까. “예수는 좋지만 기독교인은 싫다”고요. 바꿔 말하면 “대다수 기독교인이 예수의 말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는 것 같아 영 기독교에 마음이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iN크리스토)의 저자인 미국인 선교사 스탠리 존스(1884~1973) 역시 인도 현지인들에게 이런 말을 수차례 듣습니다. “삶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진정한 기독교인을 보고 싶다”는 게 그들의 요구였습니다.

미국 켄터키주 애즈버리대 졸업 후 선교사로 1907년 인도에 온 저자는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복음을 전하는 데 힘씁니다. 하지만 당시는 영국이 인도를 식민 지배하던 시기라 서구 문명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 영미권의 기독교 선교사는 ‘서구문명의 모델을 전수하기 위해 온 제국주의 첨병’일 뿐이었습니다.

‘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의 저자 스탠리 존스의 생전 모습. 스탠리존스재단 홈페이지 캡처

이 책 제목이기도 한 ‘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 개념은 이런 편견을 깨고 복음을 전하고자 나온 것입니다. “나는 당신들 교회뿐 아니라 그 교리에서 설명하는 그리스도도 싫다”는 한 브라만 계급의 유력 인사에게 저자의 친구가 “그럼 인도의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예수는 어떠냐”고 물은 데서 착안했습니다. 그러자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도의 예수는 사도의 옷차림을 한 채 길거리에서 눈먼 자를 고치며 한센인에게 ‘당신을 위해 하나님 나라가 밝아오고 있다’고 위로하는, 죽어가는 이웃과 함께 비틀거리며 언덕 위로 올라가는 사람입니다.… 나는 이런 예수를 사랑하고 따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결론을 도출합니다. “서구의 족쇄가 없는 예수의 복음은 보편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2가지 선교 원칙을 세웁니다. ‘기독교 대신 그리스도란 용어를 사용해 복음을 전할 것’과 ‘반드시 인도의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소개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기독교는 성경에 없는 표현일뿐더러 뜻이 애매해 사람들을 혼란시킬 우려가 있다”고 봤습니다. 또 “기독교는 인도의 민족성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며 “주님이 그랬듯 우리도 ‘현대판 열심당’이란 할 수 있는 인도 민족주의자와 좋은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의 저자 스탠리 존스는 인도 독립운동가들과 활발히 교류했는데 마하트마 간디도 그중 한 명이었다. 물래 곁에 앉은 간디의 모습. 국민일보DB

그는 비폭력주의의 상징인 마하트마 간디 등과 교류하며 현지인의 마음을 읽는 법을 배웁니다. “기독교가 외세가 아닌 인도를 구원하는 원동력이 되길 바란다”는 저자의 말에 간디는 “먼저 모든 서양인이 타협 없이 예수처럼 살고 기독교의 핵심인 사랑을 강조하며 기독교 외 종교를 열린 마음으로 공부해달라”고 당부합니다. 이렇게 해야 기독교가 인도인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갈 수 있다는 조언이었습니다.

이 조언을 받아들인 그는 현지 지식인과 종교적 대화를 나누는 ‘원탁회의’를 엽니다. 소위 말하는 ‘대화의 선교’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타종교에 관한 공격적 언사 없이 예수 그리스도만 변론했습니다.

현세의 고통은 전생의 결과란 힌두교 교리인 업보(카르마) 때문에 십자가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던 이들은 그의 설명과 더불어 간디의 희생적 삶을 보며 자연스레 그리스도를 이해합니다. 힌두교도인 간디가 기독교의 매개체가 된 셈입니다. 실제 간디는 대중 연설에서 신약성경을 들고 산상수훈을 읽으며 “이것이 연설 전부다. 이대로만 행동하라”고 강연한 적도 있습니다. 일각에선 “선교사들이 이 땅의 아들인 간디를 이용해 인도를 기독교화한다”고 우려할 정도였습니다.

2017년 12월 25일 인도령 카슈미르 주도에서 인도 기독교인들이 성탄절을 기념하며 교회 앞 양초에 불을 붙이고 있다. AP뉴시스

허나 이 때문에 저자는 간디와 예수를 비교하는 신성모독적 언사를 용인한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이에 그는 “간디를 통해 이들은 무의식 중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있다”며 이렇게 반박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제게 인도의 영혼 1인치를 준다면 나는 거기에 1인치를 더 달라고 호소할 것입니다. 이 위대한 민족의 영혼이 모두 하나님 아들의 발 아래 엎드릴 때까지 계속 호소할 것입니다.”

그는 산스크리트어로 수도공동체를 뜻하는 아슈람에 기독교를 접목한 ‘기독교 아슈람’을 선교 방식으로 채택해 인도 문화를 존중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했습니다. 이 공로를 인정받은 저자는 1962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고 이듬해 간디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저자의 일화 속 여러 인도인, 특히 간디가 한 말은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김병삼 만나교회 목사는 최근 이 책을 주제로 한 설교에서 “예수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 기독교인은 그분을 전하는 매개체”라며 “우리가 이들에게 성령의 열매인 인내와 사랑 등을 보일 때 세상은 복음과 예수가 좋은 것이란 걸 인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기독교인이 전하는 예수는 어떻습니까. 한국의 길거리를 걷는 예수를 바로 전하고 있습니까.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