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제16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율리아나 아브제예바는 ‘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 이후 45년 만의 여성 우승자다. 당시 아브제예바에게는 ‘어둠 속의 피아니스트’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결선 연주 도중 정전 사고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연주를 이어나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러시아 출신 아브제예바가 1위에 오른 쇼팽 콩쿠르 결과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콩쿠르에서 유난히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 탓이다. 2위 잉골프 분더(오스트리아)와 3위 다닐 트리포노프(러시아)를 지지하며 결과에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논란 때문에 아브제예바는 우승자에 걸맞은 환호를 받진 못했다. 오히려 분더와 트리포노프가 쇼팽 콩쿠르 이후 수많은 러브콜을 받았다.
하지만 아브제예바는 쇼팽 콩쿠르 이후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았다. 독주부터 실내악, 오케스트라 협연 등 다양한 무대를 통해 내면의 성숙함과 음악적 탐구에 집중했다. 음반 활동도 왕성해서 지난해엔 쇼팽의 말년 작품들을 담은 음반 ‘쇼팽: 보야지’를 발매했고, 올해는 쇼스타코비치의 24개의 전주곡과 푸가 전곡을 담은 음반 ‘쇼스타코비치: 전주곡와 푸가’를 내놓았다.
그가 쇼팽 콩쿠르 우승 15년 만인 올해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올해 쇼팽 콩쿠르는 11월 5~23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다. 오는 2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리사이틀을 앞두고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쇼팽 콩쿠르에) 다시 가게 돼 무척 설렌다. 15년이 길지 않게 느껴질 만큼 2010년의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심사위원으로서 무대에 오르는 모든 참가자의 연주에 마음으로 함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10년 쇼팽 콩쿠르 당시 “쇼팽의 정신과 완벽히 일치하는 연주”라는 찬사를 받은 아브제예바는 그동안 쇼팽 레퍼토리에서 특히 두각을 드러내며 ‘쇼팽 스페셜리스트’로도 불렸다. 그에게 쇼팽의 의미를 묻자 “쇼팽 콩쿠르를 준비하는 동안 1년 가까이 쇼팽의 언어 속에서 살았고, 그가 지나간 장소들도 찾아가 봤었다. 그렇게 내 안에서 쇼팽은 아주 개인적이고 소중한 존재가 됐다”고 말했다.
그의 올해 내한 리사이틀은 쇼팽으로만 프로그램을 채웠던 지난 2023년과 달리 쇼팽(1810~1849)과 쇼스타코비치(1906~1975)로 구성했다. 1부에서는 쇼스타코비치의 ‘24개의 전주곡과 푸가’ 중 7곡을 연주하고 2부에서는 쇼팽의 ‘24개 전주곡’ 전곡을 선보인다. 두 작곡가의 작품을 나란히 배치한 이유에 대해 그는 “시대도 언어도 다른 두 작곡가를 함께 놓는 일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두 작곡가의 세계를 함께 비춰보는 건 흥미롭다”면서 “무엇보다 쇼팽과 쇼스타코비치의 ‘24개 전주곡’은 모두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에서 출발했다. 근원은 같지만 표현은 다른데, 쇼스타코비치의 어떤 곡은 쇼팽을 떠올리게도 한다. 덕분에 쇼스타코비치를 ‘구조적’이고 ‘리얼리즘적’ 면모만이 아니라 낭만주의의 정서까지 품은 음악으로 다시 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독주자로서 리사이틀이나 협연 무대에 서는 것 외에 실내악 활동에도 열의를 가지고 있다. 그가 그동안 주로 협업한 연주자는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 첼리스트 다니엘 뮐러쇼트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는 “크레머와는 11년 넘게 꾸준히 함께했다. 그가 이끄는 카메라타 발티카 오케스트라와 함께 폴란드 출신 러시아 작곡가 미치슬라프 바인베르크의 피아노 5중주 등 여러 작품을 연주하고 녹음했다. 또 독일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 첼리스트 뮐러쇼트와 트리오 활동을 했으며 벨체아 콰르텟과 피아노 오중주를 자주 연주했다”면서 “실내악은 폭넓은 레퍼토리와 더불어 동료 음악가들과의 교류에서 오는 신선한 자극이 정말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