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된 위기 사회, 교회·국가 사이의 평화의 길은?

입력 2025-09-11 16:39
김규섭(가운데) 아신대 교수가 11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교회에서 진행된 '포럼 빛' 2차 학술대회에서 '두 도성 사이에서 교회의 공적 감각'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극심한 갈등 가운데 놓인 교회가 걸어가야 할 길은 어디일까.

‘포럼 빛’이 11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교회(이풍인 목사)에서 ‘양극화된 위기 사회 속 교회와 국가의 화평’을 주제로 연 학술대회에서는 교회가 특정 정당의 확성기가 아니라 사실과 법치, 약자 보호라는 공동선의 기준을 따라 공적 현안을 분별한 뒤 진실과 절제, 비폭력 언어로 사회와 소통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두 도성 사이에서 교회의 공적 감각’을 주제로 첫 발표를 한 김규섭 아신대 교수는 “공적 감각은 타자와 공동체, 법과 절차를 두루 고려하는 시민적 감수성”이라면서 “교부 어거스틴의 ‘지상의 평화(pax terrena)’ 개념을 따라 확인과 절제, 비폭력 언어를 통해 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병훈 고신대 교수는 ‘리처드 백스터에 따른 국가론’을 주제로 강연했다. 리처드 백스터(1615~1691)는 영국 청교도 전통의 대표적 목회자이자 신학자로 ‘거룩한 공화정’이라는 정치사상을 주장하며 하나님과 법 아래 절대군주제도, 대중 영합적 무제한 민주주의도 모두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우 교수도 “백스터는 입헌적 질서와 자유, 양심 보호를 핵심적 가치로 제시했다”면서 “그의 사상을 따르면 교회와 국가의 관계가 결탁이나 적대가 아니라 협력적 동반이며 국가 명령이 신앙과 인권을 훼손할 때는 비폭력적 불복종이 정당하다고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반혁명 국가학에 나타난 국가와 교회의 바른 관계성 고찰’을 주제로 발표한 박재은 총신대 교수는 ‘구별과 자유의 원리’를 제시했다.

아브라함 카이퍼(1837~1920)는 네덜란드의 개혁주의 신학자이자 언론인, 정치가로 교회와 사회, 국가를 잇는 공공신학의 틀을 세운 인물로 네덜란드 자유대학을 설립한 뒤 총리까지 지냈다.

박 교수는 카이퍼의 ‘반혁명 국가학’을 토대로 “국가는 질서와 통치, 교회는 영혼의 신령함을 담당하므로 영역 혼동을 경계해야 한다”면서 “로마식 ‘교회의 군림’도, 루터파식 ‘국가의 군림’도 아니라 개혁교회 전통의 상호 독립과 상호 협력이 해법”이라고 제시했다. 그러면서 “재정 종속이 왜곡의 뿌리로 교회의 자립과 국가의 비개입, 선거철 정치화 절제와 예배의 자유 보장이 과제”라고 꼽았다.

안인섭 총신대 교수는 ‘종교개혁사적 관점에서 본 현대 사회 양극화 극복을 위한 신학적 제언’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종교개혁사 속에서 양극화의 뿌리와 처방을 동시에 제시했다.

안 교수는 “츠빙글리는 통치자를 공동체의 봉사자로, 뇌물과 용병제를 구조적 죄로 비판했다”면서 “칼빈은 제네바에서 구빈원과 난민기금, 디아코니아를 제도화하고 구제를 예배의 차원에서 재해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인간 존엄과 상호 의존에 기초한 연대와 디아코니아, 공적 복지의 결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현범 총신대 교수는 ‘양극화의 위기에 선 한국교회’를 주제로 교회의 심각한 정치화를 직시했다. 최 교수는 “겉보기에 교회 내 이념 갈등이 낮더라도 이는 보수 편향 속에서 침묵의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라면서 “최근 ‘반동성애 문화전쟁’이 더해지면서 복음보다 이슈를 절대화하는 정치화된 신앙이 자리 잡았다”고 우려했다.

최 교수는 “루터식 분리를 넘어 하나님의 주권 아래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강단에서 통전적 복음으로 토라의 공평과 약자 보호, 예수의 긍휼을 가르쳐 정책 판단의 기준을 훈련하는 일이 해법”이라고 제시했다. 이어 “역사와 평화, 인권 등 사회 절기와 선거 시기의 공적 설교를 정례화하자”고도 제안했다.

‘포럼 빛’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교회의 해답을 찾자는 취지로 신학대 교수와 목회자들이 참여해 지난해 창립했다.

글·사진=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